2023. 1. 27.

[인터뷰 시리즈: 글자-마음 보기집] #11 ‘서예에서 서체로’ 폰트 디자이너 오유빈

윤디자인그룹 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 글자-마음 보기집

 

[꼴] 겉으로 보이는 사물의 모양

[결]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글자(typeface)는 주로 ‘꼴’에 관하여 이야기됩니다. 글자가 품평의 대상이 될 때 그 근거는 대개 꼴의 완성도입니다. 인격이 피지컬과 멘탈의 총합으로 구성되듯, 어쩌면 글자도 그러한 겉과 안의 본연한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사람의 신체와 글자꼴(글자의 모양)이 조응한다면, 사람의 멘탈에 해당하는 글자의 요소는 무얼까, 또 상상하다가 이렇게 답을 내리기로 합니다. 글자를 그리는 디자이너의 태도.

 

그러고 보니, 그동안 『윤디자인 M』은 윤디자인그룹 디자이너들의 산출물에만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글자의 꼴, 그래픽의 꼴, 타이포그래피의 꼴 등등. 문득 이러한 디자인 작업들의 좀더 깊은 측면을 바라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글자-마음 보기집]이라는 이름은 ‘글자 보기집(type specimen)’에 ‘마음’을 살짝 얹은 제목입니다. 글자의 [꼴]에만 향해 있던 시선을 글자 디자이너의 [결]로 확장해본다는 의미입니다. 윤디자인그룹 디자이너들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그와 함께 그들의 ‘마음’도 펼쳐보려 합니다.

 

시리즈명이 [글자-마음 보기집]이고 ‘디자이너 인터뷰’를 표방하지만, 디자인 직종 외의 직원들도 이 시리즈에 (자주는 아니겠지만) 등장할 예정입니다. 윤디자인그룹이 글자를 근간으로 하는 기업인 만큼, 디자이너가 아닌 많은 직원들도 결국은 글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각자의 직무를 수행합니다. 즉, 그들의 ‘마음’과 ‘결’ 또한 [글자-마음 보기집]에 수록되어야겠지요.

 

윤디자인그룹 직원들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구나, 기계적으로 글자를 생산하는 인적자원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고와 방향을 지닌 인격체들이구나, 하고 느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글자-마음 보기집] 열한 번째 인터뷰이

‘서예에서 서체로’ 폰트 디자이너 오유빈

 

 

#도구는_달라도_언제나_글자

 

“전 서예를 전공한 디자이너입니다”

학원에서 한자급수시험을 준비하다가 취미로 시작한 서예가 적성에 잘 맞아 붓을 잡기 시작했어요. 연필만 잡을 줄 알았던 저에게 ‘붓’이라는 새로운 도구가 생겨 다양한 서체를 접하게 되었고, 서예라는 학문을 더 깊게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결국 서예학과에 입학해 4년 동안 한문, 한글 서체에 대해 배우게 되었죠.

 

제가 작업했던 서예작품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바로 졸업전시회 작품입니다. 한문작품의 경우 전통적으로 작품 구성을 했다면, 한글 같은 경우는 현대적으로 표현했어요. 제가 나태주 선생님의 시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꼭 서예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계신 공주로 직접 찾아뵙고 허락을 받아 작업했던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더 기억에 남고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오유빈의 졸업전시회 작품: 한문작품(왼쪽)과 나태주 선생님의 시로 작업한 한글작품(오른쪽)

 

 

“타이포그래피 수업으로 시작된 폰트 디자이너의 꿈”

학교에 다니면서 아직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전, 타 학과 전공 수업을 많이 들으려고 했어요. 처음 들었던 수업이 시각디자인학과의 타이포그래피 수업이었는데, 글자를 만들거나 활자를 이용한 자유로운 레이아웃의 디자인이 항상 똑같은 규격으로 작품을 만들었던 저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전공으로 시각디자인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죠. 그때 윤디자인 폰트도 많이 사용하면서 폰트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인턴부터_지금까지_궁체부터_플립폰트까지

 

“동기부여가 된 인턴 과제”

윤디자인그룹에는 인턴 과정을 거쳐 입사하게 되었어요. 인턴 때 작업했던 과제가 특히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는데요, 좋아하는 브랜드를 한글로 레터링하는 과제였어요. 스케치부터 시작해서 모든 작업이 처음이라 배워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지금 보면 많이 어설픈 부분도 있지만, 지금까지 폰트 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 해준 제 첫 작업물입니다.

 

오유빈의 인턴 과제: 좋아하는 브랜드 맛동산으로 작업한 한글 레터링

 

 

“첫 프로젝트 덕온공주체, 자신 있게 개발에 참여했지만…”

인턴 과정에 끝나고 가장 먼저 작업한 것은 바로 [덕온공주 복원 프로젝트]였어요. 서예를 전공한 저에게 딱 맞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개발에 참여했지만, 사실 시작부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세로쓰기와 가로쓰기 중 전 가로쓰기 개발에 참여했는데, 가로쓰기의 경우 궁체 흘림의 판독성 연구가 필요했거든요. 사용자들에게 판독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흘림 부분을 정자 형태로 변경하는 시도를 했어요. 세로짜기와는 쓰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폰트화하는 과정에서 현대적인 쓰임에 맞게 제작한 것이지요. 덕온공주체 가로쓰기는 종종 자막에 쓰이는 걸 보기도 하는데요, 발견할 때마다 형태 고민을 많이 했던 생각이 나서 더 반갑고 뿌듯하더라고요!

 

오유빈이 개발에 참여한 [덕온공주체]

 

 

“자유로운 자소 표현으로 다양한 글자를 만드는 손글씨 폰트의 매력”

최근에는 손글씨 작업을 많이 해왔어요. 그중 미래엔과 윤디자인그룹이 매년 진행하는 [미래엔 손글씨 공모전 개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공모전에서 수상한 학생들의 손글씨로 폰트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인데요, 손글씨 원도 글자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최대한 원도에 가깝게 작업을 합니다. 손글씨 폰트는 작업 속도도 비교적 빠른 편이고, 자유로운 자소 표현으로 다양한 글자들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미래엔 손글씨 개발 작업을 맡게 되었는데요, 손글씨 장인이 될 때까지 열심히 달릴 예정입니다.

 

오유빈이 개발에 참여한 [미래엔 손글씨 공모전 개발 프로젝트]

 

 

“독립적인 작업 시스템을 자랑하는 플립폰트” (feat. 윤멤버십 톡톡)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모바일 플립폰트도 만들고 있습니다. 라틴과 한글 모두 작업하고 있고, 앞으로는 무려 히브리어까지 작업할 예정이에요. 플립폰트는 시장분석을 통해 시안부터 파생까지 모두 혼자 작업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자유롭게 제가 원하는 글자를 만들 수 있어서 좋아요! 다만 아쉬운 점은 모바일용이기 때문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과 또 저는 아이폰 유저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눈물)

 

플립폰트 YD 방울방울해플립폰트 YD Schedule Note
오유빈이 작업한 플립폰트 [YD 방울방울해]와 [YD Schedule Note], 그리고 이를 활용한 포스터

 

 

그렇지만 윤디자인그룹 폰코(font.co.kr)에서 컬렉션 폰트 중 [윤맴버쉽 톡톡]이라는 상품이 있어요. 모바일 플립폰트를 PC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답니다. 저와 같이 아이폰 유저분들을 위한 상품인 것 같아요. 매달 새로운 폰트들이 업로드되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윤디자인그룹에서_폰트디자이너로_일한다는것

 

“윤디자인그룹 TDC는 소통이 정말 잘 됩니다”

윤디자인그룹에 다니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 중 하나가 팀원들과 소통이 정말 잘 된다는 점이에요. 회의에서 자유롭게 피드백이나 도움을 받기도 하고요, 따로 요청을 드려도 바로바로 피드백을 주십니다. 폰트 이름을 정할 때도 팀원들에게 폰트명을 추천받기도 하는데, 여러 폰트명과 콘셉트에 어울리는 단어들을 쭉 뽑아보고 투표를 진행하기도 하죠.

 

“글자를 만드는 보람”

글자는 우리 일상생활 속에 빠질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들을 글자로 전달해줄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이 정말 많아 매력적이죠.

 

폰트를 만들 때 많게는 한글 11,172자, 영문 94자, 특수문자 986자 스펙으로 작업해요. 한 자 한 자 만들어야 하는 만큼 시간과 노력이 정말 많이 필요하죠. 솔직히 일을 하면서 한계에 부딪칠 때도 많고 시간을 쏟아붓다 지친 적도 많습니다. 그럴 땐 머리를 리셋 시켜주거나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면서 다시 달릴 힘을 키우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서체 한 벌을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결국 이런 보람이 저를 폰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게 만드는 것 같아요.

 

 

 

 

글자는 우리 일상생활 속에 빠질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들을 글자로 전달해줄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이 정말 많아 매력적이죠.

— 폰트 디자이너 오유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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