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콘텐츠 [TYPE÷](타입나누기)는 윤디자인 TDC(Type Design Center)가 제작하여 새로 출시한 서체, 즉 타입(type)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입니다. 서체를 만든 담당 디자이너의 영감과 제작 의도,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동료 디자이너들의 관점은 또 어떨지. 하나의 서체를 주제로 그 서체와 어울리는 공간에서 타입 디자이너들이 대화를 나누고 이를 기록하여 들려드립니다.
열네 번째로 나눈 타입은 김미래 디자이너가 제작한 「말랑슬라임」(🔗자세히 보러 가기)입니다. 동글동글 손글씨 느낌의 귀엽고 통통 튀는 매력의 「말랑슬라임」에 관해 세 명의 타입 디자이너가 폰트뒤풀이를 해보았습니다.
글. 이정은
사진. 김지연, 이정은
말랑슬라임÷(김미래+이정은+김지연)
@카페 요괴냥수비대
파스텔톤의 흐물거리는 고양이가 테마인 ‘요괴냥수비대’는 보자마자 “말랑슬라임 타입나누기 장소는 여기다!” 점찍었던 곳이다. 로고에 쓰인 다섯마리의 고양이 색상이 말랑슬라임 폰코 상세페이지 색상과 일치하며, 흐물거리는 모양은 슬라임을 연상시키기에 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미래 디자이너가 지독한 애묘인이다.
정은: 이번 타입나누기부터 형식을 약간 바꾸어봤어. 2023년 1월 벨리곰 폰트로 시작해 벌써 타입나누기가 14번째더라. 신규 폰트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들과 그걸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던 동료 디자이너들 몇몇이 함께 모여 폰트 뒤풀이 형식으로 진행해 왔는데, 이 형식을 오랫동안 유지하다 보니 질문이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이 있어서 이번에는 이곳 윤디자인M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타입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으로 질문을 받아 보았어.
지연: 내가 질문의 내용들을 미리 추려봤는데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나눌 수 있었어. 첫 번째는 폰트 사용성에 대한 것, 두 번째는 폰트의 형태에 대한 것, 세 번째는 폰트 패밀리나 네이밍, 스펙에 대한 질문. 하나하나 궁금증을 던져볼게.
우선 첫 번째, 폰트 사용성에 관한 질문이야. 말랑슬라임은 범용성이 높은 폰트라 생각되는데, 폰트 파일을 개별 구매할 순 없는지, 또 모바일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답변해줘.
정은: 폰트 클라우드 방식 이전엔 개별 폰트 구매가 가능했고 현재도 텀블벅 같은 플랫폼에선 개별 폰트 형태로 리워드를 제공하지만, 개별 폰트로 판매할 때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복제에 대한 관리거든. 그래서 현재는 대부분의 폰트 회사가 클라우드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알다시피 클라우드의 큰 장점은 로컬에서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야. 말랑슬라임이 무척 맘에 들어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은 욕구는 우리가 십분 이해하지만, 폰코자키*를 통해 더 쉽게 폰트를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
*폰코자키: 폰코자키는 폰트 쇼핑 플랫폼 폰코(font.co.kr)에서 제공하는 무료폰트와 구매한 폰트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폰트 관리 툴입니다. 필요한 폰트를 활성화하면, 문서 작성이나 디자인 프로그램 등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바일 폰트에 대한 질문은 일단 이 폰트가 모바일 환경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주신 질문 같아서 감사해. 모바일에선 손글씨처럼 말랑하고 따뜻한 폰트들이 인기가 많잖아. 말랑슬라임은 초반에 모바일 폰트로 기획된 게 아니기도 하고, 리테일 폰트와 모바일 폰트의 프로세스는 좀 달라서 말랑슬라임 자체가 모바일 폰트가 되긴 어렵겠지만, 비슷한 인상의 모바일 폰트를 기획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
미래: 그러려면 우선 현재의 말랑슬라임 레귤러도 모바일 환경에선 약간 굵게 보일 거라 굵기 조정도 다시 해야해.
지연: 맞아! 추가로 또 질문할게. 무료 체험에 대한 궁금증인데, 신규폰트 무료 체험 기간 한 달은 짧다, 두 달 체험이면 더 좋겠다. 그리고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나면 폰트를 사용한 이미지는 계속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
정은: 한 달 무료 체험도 없다가 재작년에 생긴 거랍니다. 하하😄 그리고 무료체험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체험 기간 내에 만든 작업물은 재편집하지 않는 한 라이선스 범위내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무료 체험 기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어. 그러다 맘에 들어서 구독 서비스까지 연결되면 더 좋고!
지연: 다음은 폰트의 형태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할게. 디자이너가 해당 폰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키즈 콘텐츠를 타깃으로 한 만큼 이 폰트에서 가장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단어 조합이 무엇인지, 또 가장 마음에 드는 글자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어.
미래: 이 폰트가 Regular와 Bold의 형태가 약간 다른데, 볼드는 모든 면이 곡선으로 처리돼 있어 좀 더 귀여운 인상을 가지고 통통하다 보니 이곳저곳 쓰임이 많을 것 같아. 그리고 작업하면서 아무래도 ‘말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테스트했고 자주 봐와서 그런지 ‘말랑’ 두 글자가 가장 익숙해졌어. 그래서 폰트명 ‘말랑슬라임’ 자체가 이 폰트를 가장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단어조합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말랑슬라임 마음에 드는 부분은 한글 작업하면서도 즐거웠지만, KS특문 부분도 굉장히 재밌었어. 각이 없는 슬라임의 특징을 같게 하다 보니 특문에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더라고. 한글과 라틴뿐만 아니라 특문도 자세히 봐줬으면 좋겠어!
정은: 딩벳도 신경써서 만들었잖아.
지연: 딩벳에 대한 질문이 마침 있었어. 딩벳에 파츠나 글리터 아이디어가 좋다, 딩벳의 파츠들을 어떻게 써야 되고 또 몇개나 있는지. 그리고 재밌었던 게 질문 중 폰트를 제작한 디자이너가 슬라임카페 좀 다녀보신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어.
정은: 이 폰트에 대한 기획 얘기를 먼저 꺼내야 할 것 같은데, 이 폰트를 처음부터 슬라임 콘셉트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 우선 기획 단계에서 폰트의 용처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유아용 영상 콘텐츠 자막에 어울릴 만한 폰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게 시작이었고, 그럼 그 시장에 현재 어떤 폰트가 사용되는지를 조사했을 때 끝이 둥글고 획이 유연하면서 손글씨 느낌이 가미된 약간 굵은 폰트나 탈구조의 자유분방한 산세리프 폰트들이 많이 사용되는 것을 알았어.
이를 반영해 우선 레귤러 폰트가 작업된 거고, 이후 패밀리 확장에 있어 미래 디자이너와 내가 여러모로 아이디어 스케치를 많이 해봤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왕꿈틀이 같은 젤리의 콘셉트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슬라임을 잡은 건 알다시피 우리 집 둘째가 딱 이 폰트가 사용될 만한 영상 콘텐츠의 타깃이잖아? 실제 이 나이 또래 아이들이 슬라임을 무척 좋아해. 슬라임 유행은 사실 지금 갑자기 생긴 건 아니야. 꽤 오랫동안 유행 중인데, 생각해 보면 나 어릴 때는 ‘만득이’라고 조그만 고무풍선 안에 전분 같은 걸 넣어 뽀드득 손가락으로 눌러 가지고 놀던 인형이 있었거든. 만득이도 슬라임도 그걸 만지는 동안은 아무런 유해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갖고 노는 거야. 아, 젤리보다는 슬라임 콘셉트가 더 좋겠다, 레귤러는 자막용인 만큼 가독성을 우위에 둔다면 나머지 웨이트에선 좀 더 슬라임 콘셉추얼하게 가도 좋겠단 판단이 선 거지.
지연: 맞아. 나도 예전에 수능 앞두고, 공부하기도 바쁜 그때 한참 슬라임을 가지고 논 적이 있었어. 지금 생각하면 제정신이었나 싶었지만 정말 그 순간만큼은 스트레스를 잊었던 것 같아.
정은: 슬라임을 콘셉트로 잡고 실제로 아이와 슬라임 카페를 갔었어. 세상에, 난 슬라임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슬라임은 약간 물컹하면서 미끈거리고 젤리 같은 느낌인데, 가봤더니 포슬포슬한 모래 질감 같은 슬라임도 있고 매트한 질감도 있고 정말 다양하더라. 그리고 파츠*의 세계도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나 많을 줄이야! 미래 디자이너에게 폰트에 파츠 딩벳을 꼭 넣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고, 글리터 딩벳은 미래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인데, 자폭을 0으로 설정해 글자와 겹치게 표현할 수 있어. 슬라임 폰트를 통해 실제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것 같은 재미를 구현한 거지.
*파츠(parts): 슬라임에 섞어 넣는 다양한 종류의 작고 개별적인 꾸밈 재료나 내용물
미래: 글리터는 슬라임에 넣는 부재료야. 슬라임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게 하는 펄 조각인데, 자세히 보면 하트, 별, 꽃 등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게 재밌었어. 파츠는 덩어리감이 있어 각각 글립 하나에 배치하기 좋았지만 글리터는 어떻게 넣는 게 좋을까 고민 중에 자폭을 0으로 해서 글자랑 겹치게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어도비 프로그램에선 안전하게 구현되고 그 외 프로그램에선 구현이 안 될 때도 있지만 재밌는 시도라고 생각해.
지연: 서체명에 대한 질문이 있어. 윤디자인은 서체 이름을 은유적으로 짓는다고 생각했는데 말랑슬라임은 엄청 직접적이라 놀랐습니다. 그렇게 지은 이유가 있는지?
정은: 우리가 은유적으로 지었었나? 최근의 🔗목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은데. 하긴 말랑슬라임은 엄청 직접적이긴 하지. 말랑한 슬라임 콘셉트의 폰트인 걸 폰트명에 그대로 드러나니까.
미래: 슬라임 콘셉트를 잡고 작업을 하면서도 최종 서체명이 결정된 건 아니라서 내부에서는 초반부터 ‘유튜브키즈’ 폰트라고 부르고 있었어. 근데 어느 날 TQC(Type Quality Center) 부장님이 지나다가 흘려 지나가듯 “말랑슬라임?”이라고 하셨는데 괜찮은 거야. 이후부터 유튜브키즈라고 안 부르고 말랑슬라임이라고 했는데 그게 최종 폰트명이 됐어.
정은: 레귤러가 어느 정도 파생되고 패밀리 논의 단계에서 미래 디자이너랑 폰트명에 대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나눴었어. 젤리를 연상시키는 네임도 있었고. 앙글앙글이라는 이름도 있었어. 발음이 귀엽고 ‘앙글거리다’가 어린 아이가 소리 없이 자꾸 귀엽게 웃는다는 뜻이더라고. 그리고 슬라밍이라는 후보도 있었는데 결국 ‘말랑슬라임’이 가장 직관적이고 좋았어.
지연: 다시 파츠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와서 실제 파츠 딩벳이 많은데 선정 기준이 뭐였는지 궁금해 하는 질문도 있어.
미래: 파츠에 대한 리서치를 해봤는데 엄청 다양한 거야. 음식 콘셉트도 있고 바다 콘셉트도 있고 진짜 어마어마하게 많아. 그중에 인기가 많고 귀여움이 돋보일 수 있는 것들로 선별했어.
정은: 이게 나름 4개의 카테고리가 있어. 그냥 선별한 게 아니라구! 잘 보면 육지동물 4개, 바다생물 4개, 과일 4개, 디저트 4개야.
지연: 어? 진짜다!
미래: 딩벳 작업할 때 선별하고 같은 톤으로 그려내는 게 재밌었어. 욕심 같아선 더 많이 넣고 싶었는데, 활용도가 좋을 만한 걸 골라 넣다보니 글리터 10개, 파츠 16개를 넣었어.
지연: 미래 디자이너가 가장 좋아하는 파츠는 뭐야? 대충 예상이 가긴 하지만…
미래: 그 예상대로! 내가 왜 고양이를 가장 먼저 넣었겠어?(웃음) 고양이가 가장 좋지만 고래를 비롯해 바다친구들도 잘 나온 것 같아. 딩벳별로 동일한 무드를 가지려고 신경써서 작업했지.
지연: 폰트 패밀리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혹시 볼드보다 더 두꺼운 패밀리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레귤러랑 볼드랑 한글 스펙이 다른 이유가 뭔지 궁금해 하는 질문도 있었어.
미래: 패밀리 아이데이션을 하면서 정은 팀장님이랑 많은 시도를 해봤어. 네온 효과를 주는 것도 있었고, 아웃라인만 남기는 것도 고민해봤고, 텍스쳐에서 슬라임이 빛나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까에 있어서도 광택을 길게도 해보고 짧게도 해보는 등 여러 시도를 거쳐 현재의 형태가 결정된 거야. 볼드보다 더 두꺼운 패밀리 추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선 이게 슬라임 폰트이니 볼드에서 아예 더 퍼지고 굵게 해서 글자로 읽히기보다는 슬라임 물성에 더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란 논의가 있긴 했어. 하지만 자막에 사용되는 것은 우선 읽혀야 하니까 가독성 측면을 무시할 수 없더라고. 근데 말랑슬라임 폰트가 많이 사용된다면 나중에 배리어블로 구현해 보고 싶은 욕심은 있어. 슬라임이 콘셉트니까 배리어블로 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아.
정은: 맞아. 현재 개발된 레귤러, 볼드가 마스터 폰트가 되고 형태를 굉장히 뭉뚱그려 겨우 글자로 읽히는 스타일을 하나 추가로 개발해 배리어블로 연결하는 것도 흥미로운 시도가 될 수 있겠다.
레귤러와 볼드, 텍스쳐의 한글 스펙이 다른 이유는 우선 범용성 측면에서 레귤러가 많이 사용될 거라 예상했고 자막용으로 기획이 된 거니 다양한 발음을 구현해 내려면 만자 스펙의 조합자 방식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어. 근데 볼드와 텍스처는 그보다 ‘슬라임’이라는 콘셉추얼함에 초점을 맞춰 획과 획이 만나는 지점의 모든 각을 없애자고 했거든. 모든 획이 슬라임처럼 흐물하게 이어지다 보니 완성자 작업으로 하나하나 밀도를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어. 텍스처의 경우 형태는 볼드와 형태가 같고 그 위에 반짝이는 텍스처를 입힌 거라 스펙은 동일해.
지연: 볼드는 각이 없이 모든 획이 둥글게 이어져 있는데, 이걸 다 일일이 만지며 형태 제작한 건지, 아니면 폰트제작툴의 어떤 기능을 활용한 건지 개인적으로 궁금해.
미래: 마스터 코너 기능을 활용했다기 보단 이게 글자의 획 굵기나 밀도에 따라 굴려지는 정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작업했어.
정은: 미래 디자이너가 볼드 작업하면서 고생 많이 했어. 획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다 보니 복잡한 구조의 섞임모임꼴에서 중성의 곁줄기를 초성에 붙일 것이냐 말 것이냐, 붙였을 때와 떨어뜨렸을 때 가독성과 심미성 사이에서 무수한 고민을 하며 형태를 결정지었지.
미래: 맞아. 글자로 안 읽히면 안 되니까.
지연: 대단하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아까 슬라임 카페에서 보았던 다른 종류의 슬라임처럼 뽀실뽀실한 느낌이 나는 ‘뽀실슬라임’이 후속으로 나오면 재밌을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어.
정은: 말랑슬라임, 뽀실슬라임, 매트슬라임… 티니핑처럼 무한 확장인가! 일단 많이 사용해 주세요! 많이 사용되면 슬라임 폰트의 확장판을 내놓겠습니다.
미래: 파츠도 더 넣어서!
지연: 말랑슬라임이 컬러폰트냐고 묻는 질문도 있었어.
미래: 상세페이지를 파스텔톤으로 작업해서 컬러폰트인지 물어보는 것 같은데 컬러폰트는 아냐. 컬러폰트는 모바일폰트처럼 몇 개의 딩벳에만 컬러를 넣어 포인트로 사용하는 건 좋지만, 글자 자체에 컬러를 입히는 건 아무래도 사용성이 떨어질 테니까.
지연: 그래도 어쨌든 슬라임 콘셉트니까 추후에 컬러 폰트가 개발된다면 그라데이션 효과가 들어가도 좋을 것 같아.
미래: 예쁘겠다! 좋은 아이디어!
지연: 윤M과 SNS에 올라왔던 질문은 모두 끝났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아이들이 보는 영상 콘텐츠의 자막이면 오히려 탈네모꼴처럼 글줄 흐름이 통통 튀게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정도의 구조를 짜게 된 과정이 있을까.
정은: 실제로 아이들이 처음 한글을 배울 때 사용하는 인쇄물에서는 구조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려고 탈네모꼴 글자를 많이 사용해. 초성, 중성, 종성을 명확하게 분리해서 인지하고 그것에 대한 음가를 학습하며 조합됐을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조금씩 익히게 되면 이후부터는 탈네모꼴이나 네모꼴이나 비슷하게 인식해.
하지만 말랑슬라임은 유아동을 위한 영상 자막용 폰트야. 아이들의 동요 콘텐츠 같은 걸 보면 하단에 꽤 많은 양의 글자가 들어가. 그리고 자막 특성상 반복적으로 나오고. 완전한 탈네모꼴에 가깝게 디자인하면 주목도는 좋았겠지만, 사용성 측면에서 많은 글자를 담아내기 어려웠을 거야. 말랑슬라임이 약간의 탈구조와 우상단 글줄을 가지고 있는데, 글자가 가지런히 놓였을 때 하단에 생기는 공간 때문에 리듬감이 생기지만 그게 과하지 않아.
지연: 레귤러, 볼드, 텍스처 3가지가 있는데 각각 어디에 사용됐으면 좋겠어?
미래: 영상자막용 서체로 기획된 만큼 유튜브에서 만나면 정말 반가울 것 같아! 볼드나 텍스처는 유튜브 썸네일에 사용되었을 때 충분히 주목성이 높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꼭 영상 매체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장난감 패키지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아. 슬라임 카페 체인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어도 좋고.
지연: 질문에 그 의견도 있었어. 슬라임카페에서 전용서체로 사용해주면 좋겠다고.
정은: 미국에 ‘슬루무 인스티튜트’라는 엄청나게 유명한 슬라임 체험장이 있대. 창업자인 카렌 로비노비츠가 이런 말을 했어. “슬라임은 촉각, 청각, 시각, 후각을 모두 자극해요. 그럼 뇌는 걱정과 불안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슬라임을 만지며 걸어 다니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아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아이들을 타깃으로 슬라임 폰트를 만들었지만, 슬라임은 사실 아이들만을 위한 놀잇감은 아니지. 슬라임을 만질 때의 즐겁고 편안한 경험이 말랑슬라임 폰트를 보면서도 느껴지면 좋겠어.
지연: 슬라임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콘셉추얼하게 작업했지만 그게 과하지 않고 가독성도 높아 잘 만들어진 폰트라고 생각해.
정은: 레귤러를 파생하면서 난 사실 아주 힘들진 않았는데, 미래 디자이너는 볼드 작업하느라 애 많이 먹었을 거야. 각도 없어야 하고 혼합 모임꼴의 공간감과 회색도 조절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특히 어려웠던 부분이 있어?
미래: 맞아. 민 글자와 받침 글자랑 약간의 모듈 차이도 있고, 획이 두꺼워지다 보니 회색도 조정이 어려웠어. 레귤러 만자 조합할 때는 그동안 익숙하지 않았던 프로그램을 써보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헤맨 거도 있고. 근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이 3종의 폰트를 관리하는 거였어! 처음 3종 패밀리 폰트를 출시하는 거였는데, 사용자가 레귤러, 볼드, 텍스쳐로 변환할 때 위치값이 달라지면 안 되잖아. 나는 분명히 똑같은 위치에 작업을 한 것 같은데, 테스트 과정에서 어떤 글자가 갑자기 올라가 있고. 막판에 이런 부분에 대한 수정 때문에 조금 애먹었어.
정은: 미래가 3종을 내보는 게 처음이구나! 3종 중 어떤 게 가장 많이 사용될까?
미래: 아무래도 범용성 차원에서 레귤러와 볼드가 많이 사용될 거고, 진짜 슬라임 느낌을 원하거나 광택, 입체적 효과를 바라는 큰 글자에선 텍스처가 좋을 것 같고.
정은: 미래가 벌써 타입나누기가 세 번째야. 🔗기사의맹세, 🔗모아이, 🔗말랑슬라임. 그러고보니 모두 개성이 강한 폰트네. 이 셋 중 본인에게 가장 특별한 폰트를 하나만 꼽자면?
미래: 아무래도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기획하고 작업하고 마무리했던 기사의맹세!
정은: 이 다음에 작업중인 폰트에 대한 스포일러도 해줄래?
미래: 숏폼 시장은 비대해지고 있는데, 우리 회사에 장체 폰트가 부족하다는 걸 알았어. 장체 폰트에 대한 니즈는 꽤 지속되어 왔고, 다양한 스타일의 장체 폰트가 많이 출시되기도 했지만, 그와 차별화된 새로운 스타일의 장체 스타일 폰트를 작업해 보려고 해. 현재 열심히 뼈대를 만드는 중이고 가칭까지 정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 가칭도 직접적이네?
지연: 그게 최종 폰트명이 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우 직접적이긴 하다.
정은: 미래 디자이너도 벌써 폰트디자인에 몸담은 지 5년 차야. 연차가 10년, 20년 쌓이면 어떤 폰트를 만들고 싶을 것 같아?
미래: 나 원래는 강경 제목용 폰트파였거든? 근데 요즘에는 본문용 폰트 작업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래 쓰이는 아름다운 폰트 작업을 해보고 싶어. 당장은 강한 레터링 스타일의 폰트가 만들고 싶지만.
정은: 미래 디자이너는 전용서체 프로젝트도 많이 했고, 톡톡 시리즈까지 포함해 리테일 폰트 작업도 이젠 잔뼈가 굵어. 회사에서 폰트 작업하는 것 이외에도 외부 활동도 많이 하는 것 같아. 그동안 했던 활동들을 간략하게 말해줄 수 있어?
미래: 작년부터 세운 목표 중 하나가 회사 생활 이외에도 다양한 디자인 활동을 해보자는 거였어. 우선 개인 레터링 작업은 꾸준히 하는 편이야. 이건 내 취향을 담은 작업이라 아이디어가 많거든. 주말에 틈틈히 진행해오고 있어. 그리고 작년엔 대강 포스터제 공모전에 참여했는데 운이 좋아 전시까지 할 수 있었어. 그래픽 디자인 하는 친구와 함께 했는데, 친구랑 전시 보고 포장마차에서 간식 먹던 게 생각나네.
또 최근엔 평소에 관심있게 보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여했어. 다양한 도자기 기법들 중 하나를 선택해 그 키워드에 어울리는 라틴 폰트를 15~20자 정도를 만들고, 그 글자를 활용해 도자굿즈까지 제작해보는 워크숍이었는데, 폰트와 도자기의 만남이 너무 흥미로웠어! 워크숍 결과물이 궁금하다면 내 인스타 계정(@oo.mr__)에 놀러와줘!😎 회사 안에서는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배우는 게 많고, 외부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협업하며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
정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개인 시간을 쪼개 작업하는 열정이 놀랍고 대견해! 이러니 우리가 미래 디자이너의 미래가 밝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거야. (웃음) 이제 말랑슬라임 타입나누기를 슬슬 마무리 해 볼까? 아까 슬루무의 창립자가 슬라임은 촉각, 청각, 시각, 후각을 모두 자극한다고 했는데, 내가 실제로 슬라임 카페를 가서 체험해 보니 정말 촉각과 시각뿐만 아니라 슬라임에 취향에 맞는 향수를 뿌리기도 하고 바닥풍선 공기 방울로 톡톡 튀는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게, 여긴 정말 오감 놀이터라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슬라임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는 게 아닐까? 우리가 야심 차게 준비한 말랑슬라임 폰트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길 바라며 폰트 뒤풀이를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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