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콘텐츠 [TYPE÷](타입나누기)는 윤디자인그룹 TDC(Type Design Center)가 제작하여 새로 출시한 서체, 즉 타입(type)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입니다. 서체를 만든 담당 디자이너의 영감과 제작 의도,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동료 디자이너들의 관점은 또 어떨지. 하나의 서체를 주제로 그 서체와 어울리는 공간에서 타입 디자이너들이 대화를 나누고 이를 기록하여 들려드립니다.
열세 번째로 나눈 타입은 송우빈 디자이너가 제작한 「목린」(🔗폰코에서 자세히 보러 가기)입니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고전적 인상을 가진 「목린」에 관해 네 명의 타입 디자이너가 신나게 뒷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글. 이정은
사진. 이예형, 김미래
목린÷(송우빈+이정은+이예형+김미래)
@카페 공명
섬세한 공명이 모여 음악이란 작품으로 탄생하듯, 서체 ‘목린’에도 섬세한 재해석과 고민의 흔적인 ‘공명’이 담겨있다. ‘목린’의 탄생에 도움을 준 사람들과 함께 카페 ‘공명’에서 목린만의 섬세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은: 윤디자인에 입사한 후 우빈의 첫 폰트야! 그간 전용서체 작업도 병행하느라 출시가 많이 늦어졌지만 그래도 우빈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내놓은 폰트인데 기분이 어때?
우빈: 후련함, 나 자신에 대한 기특함, 그리고 아쉬움 약간? 전체적으로 내겐 ‘초석을 다졌다’는 의미가 깊어.
정은: 만약에 작업시간 더 주어진다면 손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
우빈: 패밀리 구성에 대한 걸 고민해보고 싶어. 초기 기획할 때 염두에 뒀던 세로쓰기 버전과 같이, 웨이트 확장 보다는 다양한 사용 환경에 적합한 패밀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 형태적인 부분에 있어서 아직까지는 수정하고 싶은 부분은 없어.
정은: 완벽하다?
우빈: 아아아니, 그게 아니라 내 취향이 많이 반영된 서체이니 만큼, 타인이 보기에는 어떤 모양에 있어서 왜 이렇게 했을까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내 입장에선 충분히 고민하고 타협하고 결정한 형태거든. 난 기본적으로 클래식한 것을 좋아하고, 과거의 것을 나만의 방법으로 현대에 맞게 해석해 바꿔보는 게 재밌고, 작도된 인상보다는 글자에 감성이 담기는 게 좋아. 그래서 그리드에 맞추기보다 모난 점이 있어도 인간미가 느껴지는 글자체가 더 애정이 가더라고.
정은: ‘목린’이 우빈이 시장에 내놓는 첫 폰트는 아니잖아. 첫 폰트에 대한 얘기도 조금 해 줄래?
우빈: 글자를 처음 만들었을 때 의욕이 넘치다 보니 색다른 형태의 글자를 고민하다 에도 문자를 찾게 되었고, 그래픽적인 부분이 강조되는 서체라 작업하면서 재밌었어. 처음 서체를 특이한 형태를 하다 보니 두 번째 서체는 좀 더 스탠다드한 걸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취향이 강한 편이라 그런지 목린도 색이 진한 글자가 됐어.
미래: ‘목린’이 인턴 과제로 시작했던 프로젝트인데, 어떻게 이런 폰트를 기획하게 됐어?
우빈: 당시에 인턴 과제가 ‘나’를 표현하는 글자를 만드는 거였는데 이게 (1차) 초기 시안이야. 우선 ‘나무’라는 소재 하나로 시작을 했어. ‘나무’를 글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나무가 가지는 형태적인 것보다는 나무와 글자를 공존시키는 테마에 대해 고민하다 목판활자에 관심이 갔고, 목판활자의 시초와 동양권 글자 문화에 대한 것까지 생각이 뻗다 보니 ‘명조체’가 나무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한글의 순명조체를 참고로 하되, 글자 중심선이나 구조, 미감 등을 바꾸고 강약이 느껴지는 획의 대비, 획의 모양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 획 모양은 시안에서 최종적으로 두 번이 바뀌었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수직, 수평의 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가로 줄기의 맺음에서 강을 강조하고 세로 줄기는 좀 더 정리하는 방식으로 단아한 인상을 가지는 쪽으로 수정해갔어.
정은: ‘목린’은 순명조의 인상을 가지고 왔다고 말하고 있는데, 순명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면 좋겠다.
우빈: ‘명조’라는 단어가 현재 굉장히 난잡하게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역사상에 가장 처음 등장한 명조는 한자 명조잖아. 한자 명조체는 글씨가 아닌 활자이기 때문에 제도된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당시에 목판활자를 만들 때 기술적으로 글자가 또렷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개량된 특징적 형태가 맺음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돋은맺음* 이라고 부르려는 움직임이 있고, 일본에서는 ‘비늘’이라고 불리고 있어. 한글의 명조는 해서체의 특징을 정제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다들 알다시피 한자의 명조와 한글의 명조는 다르잖아. 그런데 한자 명조체의 특징을 한글에 차용한 것을 순명조라고 해. 가장 대표적인 순명조체는 과거에 이원모체, 최근에는 격동명조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
*돋은맺음: 몸의 두께보다 큰 맺음
‘목린’이 순명조의 인상을 가지고 있으나 순명조를 재해석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첫 번째 포인트는 돋은맺음을 좀 더 그래픽적인 미려함을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두 번째 포인트는 기존의 순명조의 가로획이 지나치게 가늘어 소실돼 보일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붓의 맺음 형태를 부리에 차용해 반영한 거야. 여러모로 기존의 명조가 가지고 있던 관념을 깨기 위해 여러가지 물음을 머릿속에 띄우며 그걸 해결하기 위한 형태적 실험을 진행했고, 그 과정이 재밌었어.
정은: 예형이 이 폰트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 멘토 역할을 했는데, 옆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게 어땠어?
예형: 난 우빈 디자이너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잘 알지. 나도 글자를 만들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피드백을 줘야 하는 입장에서 대체 어떻게 피드백을 줘야할지 몰라 난관에 부딪쳤던 적도 종종 있었어. 덕분에 명조체에 대해 엄청 공부했던 것 같아. 둘의 의견이 달랐던 적도 꽤 많아서 서로 이게 낫다, 저게 낫다 엎치락뒤치락 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우빈 디자이너의 폰트이기도 하고 이유를 듣다 보면 또 다 맞는 말이라 설득이 되더라고. 옆에서 지켜보며 우와, 진짜 이 사람 지독하다 싶을 만큼 획의 기울기 변화, 맺음의 크기, 모양 등등 디테일 하나하나 신경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 ㅅ꼴의 삐침과 내릿점 모양을 결정할 때는 3가지 버전으로 TDC 투표도 진행을 했었는데, 투표의 결과보다는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하더라고? (모두 웃음)
우빈: 투표를 한다는 건 여러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겠다란 의미도 있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투표를 진행하기 전에 내 마음이 가는 쪽으로 결과가 도출되기 위해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나의 논리를 확고히 정리하자는 목적이 커. 피드백을 받고자 할 때도 왜 이렇게 디자인 했는지, 이 형태를 취하면 뭐가 더 좋은지,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어떤 건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이나 글로 정리해서 알려주면 상대도 이미지만 보고 판단할 때와는 다른 피드백을 주게 돼. 이 과정 자체가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외골수적인 면이 있어서…
정은: 내가 완벽하게 설득이 되어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
우빈: ㅊ,ㅎ의 꼭지와 ㅍ을 비롯한 이음줄기의 형태도 고민을 많이 했어. 처음엔 가로줄기의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려고 했으나, 결국 글씨의 미감을 따르는 수정 과정에서 각각 점획, 올림획을 활용하여 보다 글씨의 감수성을 드러내어 특징을 부여하기로 했지.
예형: 우빈 디자이너의 첫인상을 얘기해도 될까? 난 사실 우빈님이 클래식하게, 정석대로, 보수적으로 작업할 줄 알았거든? 근데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정립해가며 틀을 깨듯이 이 폰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어. 초반에 피드백을 줄 때는 순명조 계열의 기존 레퍼런스 폰트랑 비교를 했었는데, 우빈 디자이너 생각이 점점 확고해지면서 기존의 레퍼런스 폰트가 필요없어지게 되더라고. 그래서 나중엔 이게 맞다 아니다 보다는 이 글자에서 느껴지는 내 인상이 어떠한지, 방향이 맞게 가고 있는 건지 정도를 확인해줬던 것 같아. 아무튼 자기 의지도 확고하고 자유로운 사람이야.
우빈: 예형 디자이너는 항상 내 이야길 잘 들어줬어. 이건 이렇게 하세요!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면 내가 물어보지 않았을 거야. (웃음) 이것도 좋은데 이렇게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라는 식으로 피드백을 많이 줬었고, 이런 형태는 조판 시 공간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식으로 미래에 보일 어려움을 잡아 주기도 했어. 나는 현재를 보고, 역시 선배는 미래를 보더라고!
예형: 아무래도 내가 우빈 디자이너 보다는 서체를 많이 만들어 봤으니까 앞으로 작업해가며 어느 지점에서 힘들지가 보이더라고.
우빈: 나는 이 글자를 너무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나중엔 어디가 이상한지 무감각해지는 지점이 오는데 그때마다 예형 디자이너가 잘 잡아줬어. 예를 들어 ㅅ꼴의 내릿점이 초반에 자꾸 쳐져 보인다는데 내가 보기엔 모르겠는 거야. 근데 전체적으로 다 쳐져 보인다고 하니까 그래, 올려보자 했더니 정말 더 나아 보이더라. 아, 폰트는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누군가 이 지점이 이상하다고 하면 나를 벗어나 분명 다시 들여다봐야 해.
미래: 목린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은 어때?
우빈: 집에서 모니터에 글자를 띄우고 형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엄마, 아빠가 슬쩍 보시더니 “너 같은 거 만들었다!” 하시더라. 뭐랄까, 요즘 것들 같지 않은? (웃음)
예형: 근데 돌이켜보면 인턴과제 주제가 ‘나’였잖아! 그래서 송우빈스러운 폰트가 나왔네!
우빈: 처음 사고 과정을 다시 돌이켜 보자면 주제가 ‘나’라서 나의 어떤 특징을 끄집어 낼까 고민하던 중에 나의 사주를 생각했어. 내 사주에 나무가 많다고 했거든. 외유내강, 쓰임새가 많은 나무의 특징들이 마음에 들었어. 나도 쓰임새가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하거든.
정은: 이 폰트는 인턴 과제 발표 당시에도 ‘목린’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작업을 마칠 때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고 확정이 됐어. ‘목린’이 일반명사는 아니잖아.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낯설 것 같은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어?
우빈: 나무목. 비늘린. 나무비늘이라는 뜻으로 만든 건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일본에서 획의 맺음 모양을 비늘이라고 하고, 이 글자에도 비늘이 있으니까 단순하게 나무에서 시작했고 비늘이 있는 글자. 그래서 목린으로 불렀는데 어감도 좋았어. 감각적으로 지은 조어지.
예형: 뭔가를 만드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아. 자기만의 장르, 카테고리를 만든다고 해야 하나. 난 그게 참 신기하더라. 나는 정해진 카테고리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우빈 디자이너는 나 이 카테고리 맘에 안 들어, 내가 만들래! 하는 스타일이더라고.
우빈: 반골이랄까. 카테고리를 따르되, 그 안에서 달리할 가능성이 보이면 살짝 살짝 선을 이탈해 보는 정도?
예형: 재밌었어. 은근히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보더라고. 그런 우빈 디자이너를 보며 난 그동안 편견 덩어리였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니까!
정은: 나도 우빈의 첫인상 얘기해볼까. 처음 만났을 때 목소리가 너무 작고 말도 느릿느릿해서 과연 잘 적응할까, 너무 소극적으로 일을 하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을 됐었는데 웬걸. 액션이 큰 편은 아니지만 일을 던져주면 다각도로 고민하고 자신의 인사이트를 붙여 오더라고.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제안서나 기획서를 보면 글이 정갈하고 선택하는 어휘가 일상적이지 않아. 마치 흔한 단어를 검색했을 때 그 단어의 유의어로 나오는 다른 단어들 중 가장 흔하지 않은 단어를 선택하는 것 같은 인상이랄까. 이를테면 이런 거지, ‘곧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데, 꼿꼿하다, 강직하다도 아니고 우빈이 선택하는 건 ‘단직하다’.
우빈: 맞아. 일부러 그러는 경향이 있어. 비일상적인 단어를 하나씩 섞는 걸 좋아해.
정은: 신선했어. 이 친구 책도 많이 읽겠구나 예상했는데 실제로 책도 좋아하는 것 같고.
우빈: 한국인 평균보다 많이 읽는 거지, 결코 많이 읽는 편은 아니야. 한국인 평균이 한 달에 한 권이라던데* 그거보다 약간 많이 보는 정도야. 의무감에 책을 읽지는 않고 내가 정말 읽고 싶은 게 있어야만 읽어.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책보다는 뉴스나 레터, 브런치를 많이 봐. 활자 자체를 즐기고 내용보다 글쓴이마다 다른 문체를 살펴보는 걸 좋아해.
*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연간 독서량은 3.9권, 학생 평균 연간 독서량은 36권이라고 한다.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정은: 폰코에 올라온 목린 상세페이지를 보면 포스터 목업 이미지에 T.S.엘리엇의 ‘황무지’* 시를 인용한 게 인상적이었어. 그 시를 선택했던 이유가 있어?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로 시작되는 시인데, 마침 출시가 4월이고, 출시일에는 라일락이 필 때쯤이라 선택한 건가?
* T.S.엘리엇: 세계적 시인이자 194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특히 1922년 발표한 [황무지(The Waste Land)]는 20세기 시 중 가장 중요한 시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다.
우빈: 아, 그러네? 전혀 의도한 건 아니었어. 그 시를 선택한 건 시의 내용과 목린 폰트의 콘셉트과 형태를 연결짓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더미 텍스트 중에 골랐는데, 그 시에서 느껴지는 난해함과 중립적인 느낌이 좋았어.
정은: 그럼 개인의 더미 텍스트에 다양한 게 있다는 거네?
우빈: 응. 여러가지를 가지고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내가 직접 쓰기도 하고. 서정적인 느낌의 폰트를 서정적인 텍스트로만 쓰면 서정성을 강요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난해한 텍스트를 입히면 이게 무슨 소리야? 다시 생각하게 하거든. 그래서 현대 문학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야.
정은: 기록하는 습관은 없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 더미 텍스트는 어떻게 기억해?
우빈: 머릿속에!
정은: 이 사람 능력자네.
우빈: 머릿속에 그 글들이 다 있다는 게 아니라 잡념이 많은 스타일이라 글자를 만들며 계속 여기와 매칭할 텍스트를 생각하는 거지. 내 성격에 즉흥적인 면이 있어서 잊어버리면 큰일 나는 것들만 기록하고 대개는 기록하지 않아. 데드라인이라던지.
정은: 데드라인을 기억하는 것치고 출시가 너무 늦어진 거 아냐? (일동 웃음) 첫 서체이기도 하고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했고, 회사 소속이다보니 다른 폰트 작업도 병행해야 해서 많이 힘들었을 거야. 많이 고민하고 실험해보는 과정은 칭찬할만 한데, 앞으로는 그 과정을 좀 더 밀도 높게 축약하고 몸에 익히며 속도를 붙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럼 목린의 로마자에 대한 얘기도 해볼까? 혹시 레퍼런스 폰트가 있었어?
우빈: 영문 서체 레퍼런스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했어. 명조체가 글씨에서 활자시대로 갈 때 나타난 특징들이 명조체의 가장 큰 아이덴티티라면 영문에서 역시 글씨에서 활자로 넘어갈 때 작도된 인상을 조금 더 한 트랜지셔널, 과도기적 세리프가 여기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장 대표적인 게 바스커빌, 타임즈를 가장 많이 참고했던 것 같아.
미래: 목린 만들며 끝까지 잘 안 풀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뭐야?
우빈: 딱 말할 수 있어. ㅅ,ㅈ,ㅊ의 내릿점 형태가 특이하다보니 자꾸 내려가보이는 현상이 있는데, 그게 공간이 좁아질수록 기계적으로 좁혀주면 물리적인 위치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더 내려가보여 조정하는데 애먹었어. 내릿점을 의도적으로 올려주면 돋은맺음이 작아지고, 그러면 글자의 균형이 안 맞고, 그럼 다시 기울기를 조정해야 하고… 영향의 영향의 영향을… ㅅ은 그나마 낫지, ㅆ과 ㅉ은…
일동: 아! 공감. 가장 피하고 싶지!
우빈: 그래도 TQC(윤디자인 내부 품질관리 센터) 부장님이 많이 도와주셨어. 그리고 두 번째 고민했던 부분은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 보니까 중심축 찾는 것.
정은: 인턴과제로 이 폰트에 대해 발표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당시에 우빈이 세로쓰기와 가로쓰기 모두에 적합하게 설계하겠다고 했었어. 그 얘길 들었을 때 아직 인턴이기도 하고 꽉 찬 네모꼴 형태로 작업한다 해도 가능할까 생각했거든? 결국엔 목린이 가로쓰기용 폰트로 나왔어. 세로쓰기, 가로쓰기 모두에 적합한 폰트가 없진 않지만 난 여전히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하는데, 우빈의 생각은 어때? 목린을 좀 더 손보면 가로쓰기, 세로쓰기에 모두 적합한 서체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우빈: 가능은 한데, 그렇게 해야만 할 이유는 없다? 처음 기획단계에선 이 서체만의 특별한 가치 부여를 위해 가로세로혼용이 가능한 폰트를 시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 지금 역시 가로세로 병행이 가능한 폰트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가로쓰기만을 위한 것과 세로쓰기만을 위한 것을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해야 하다 보니 어렵기도 하고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럴 바엔 차라리 세로쓰기에 적합한 버전을 따로 만들어서 패밀리를 구성하는 게 나은 것 같아. 만약 첫 의도대로 혼용이 가능한 폰트를 만들려고 했다면 난 TQC의 피드백을 견디지 못했을 거야!
예형: 올해 안에 출시 못 했을 걸! 근데 우빈 디자이너는 시간만 더 주면 어떻게든 해내긴 할 것 같아.
우빈: 시간을 얼마나? 한… 10년?? (일동 웃음) 세로쓰기, 가로쓰기 겸용한 폰트가 몇 개 있긴 한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정은: 어려운 일이야. 그래서 난 기대를 했지. 당시에도 내가 가능하겠어? 물어봤는데 자신 있게 가능하다고 했거든.
우빈: 맞아, 기억나. 그 부분이 굉장히 매력인데 어떻게 할 거냐, 진짜 잘 할 수 있냐 물어봤었어. 능력부족! 죄송합니다.
예형: 난 사실 세로쓰기 가로쓰기 모두 가능하게 하겠다며 처음에 잡았던 꽉 찬 모듈의 시안이 내 취향이긴 했었어. 혹시 꽉 찬 모듈 버전에 대한 미련은 없어?
우빈: 한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대비가 약해지고 공간이 일률적이라 그림같이 보일 것 같아. 그럼 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겠지.
예형: 난 목린 작업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우빈 디자이너에 대한 믿음이 강해져서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우빈: 그럼 옆에 예형 디자이너에게 집요하게 물어봐야지.
예형: 갑자기 생각났는데, 우빈 디자이너가 초반에 피드백을 요청했을 때 내게 한 말이 있어. “예형님, 저는 F가 싫어요”라고 했었어! 나 그 말 듣자마자 나 대왕F인데 어쩌지? 큰 일 났다! 생각했거든? 근데 F가 싫다는 말의 의미는 “나는 F스러운 배려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돌려서 말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솔직히 말해줘도 나 상처 안 받는다 이런 의미더라고.
우빈: 내가 예형 디자이너를 멘토로서 지켜봤을 때 아무리 사수이긴 하지만 굉장히 선하고 상대가 상처 안 받게 말해주려는 경향이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어차피 상처 안 받으니 애써 돌려 말하느라 힘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어.
예형: 나에게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한 사람은 처음이라 엄청 충격적이었어! 그래서 한동안은 어떻게 말해야 하지 고민이 됐는데 나중엔 그냥 여과 없이 말하니 편하더라.
미래: 대왕F와 대왕T가 멘토와 멘티로 엮였네.
우빈: T와 F가 만났을 때 T가 좀 더 행동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F를 싫어하진 않아~
정은: 윤디자인이 우빈의 첫 직장이야. 어때?
우빈: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보니 아침마다 일어나야 하는 게 가장 힘들어! 그거 말고는 아직은 괜찮아. 일을 하고 배우는 단계니까.
정은: TDC에서 가장 늦게 출근하는 자! 유일하게 9:30 출근자인데 신기하게 지각은 잘 안 해. 꼭 25분~30분 사이에 오더라!
우빈: 서울 사는 사람이 엄살부린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30분의 여유가 굉장히 내겐 커.
정은: 지금 가장 멀리서 출근하는 미래를 옆에 두고… 미래는 성실하게 늘 8시 47분에 출근하지.
우빈: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해. 미래 디자이너이야 말로 우리 아빠가 말하는 요즘 것들이 아닌? (웃음) 나는 이렇게 꾸준한 사람을 정말 대단하다 생각하고 존경해. 요즘 사회는 재능이 넘치고 뽐내는 거 좋아하고 활달한 사람들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뒤에서 묵묵하게 해내는 모범생 스타일이 참 좋아. 그런 사람이 부럽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야.
예형: 옆에서 본 우빈 디자이너는 모범생이고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야.
정은: 굉장히 긍정적?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우빈의 재밌는 점은 말하는 태도는 꽤나 심드렁 하거든? 근데 말하는 내용은 긍정적이야. 아주 묘해.
예형, 미래: 맞아, 맞아!
정은: 상대를 헷갈리게 하는 매력이 있어.
우빈: 영화로 치면 아포칼립스 장르에서 희망을 찾는? (일동 웃음)
미래: 퇴근 이후에나 주말엔 뭐해?
우빈: 한때는 개인적으로 폰트를 그리거나, 기존의 폰트를 만지작거려 보기도 했는데 요즘엔 좀 덜한 편이야. 주말엔 대부분 놀고.
정은: 우빈이 노는 건 대체 뭘 하고 노는 걸까.
우빈: 혼자 놀아! 난 혼자 노는 게 좋아. 주말에 느즈막이 점심쯤 일어나서 혼자 게임하고, 영화보고, 책보고. 주말엔 늦게 일어나도 되니까 밤에도 좀 더 늦게 자도 되고. 핸드폰 더 봐도 되고 얼마나 큰 행복이야! 행복이 별 게 아니라니까.
정은: 자, 그럼 현재 진행중인 다음 폰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스포를 조금만 해줄래?
미래: 목린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예형: 지금 만들고 있는 폰트도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거잖아! 나한테 다음에는 명조체 안 할 거라더니 결국 또 명조를 하고 있어.
우빈: 어쩔 수 없어. 내 취향이 명조야. 지금 작업하고 있는 폰트는 요즘 한글 레터링에서 많이 보이는 라틴의 세리프를 직접 한글에 대응시킨 꽉찬 네모틀의 서체인데, 획 대비가 커서 콘트라스트가 세고 이국적이면서 목린보다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글자야. 그래픽 디자이너가 좋아할 만한 폰트랄까.
정은: 언제 출시 예정이지?
우빈: 여름에 출시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요즘은 10월까지 여름이라던데…
정은: 안돼!!!! 꼭 한여름에 우빈의 다음 서체를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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