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10.

[TYPE÷] 버추얼 인플루언서 ROZY의 3종 폰트 패밀리 「로지그자체」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

윤디자인그룹 타입나누기 버추얼 인플루언서 ROZY 로지그자체

 

2023년 새해를 맞아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 콘텐츠 [TYPE÷](타입나누기)는 윤디자인그룹 TDC(Type Design Center)가 제작하여 새로 출시한 서체, 즉 타입(type)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입니다. 서체를 만든 담당 디자이너의 영감과 제작 의도,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동료 디자이너들의 관점은 또 어떨지. 하나의 서체를 주제로 그 서체와 어울리는 공간에서 타입 디자이너들이 대화를 나누고 이를 기록하여 들려드립니다.

 

네 번째로 나눈 타입은 김주희 디자이너가 제작한 「로지그자체」(🔗폰코에서 자세히 보러 가기)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ROZY)의 이미지를 담은 브랜드 서체 ‘로지그자체’와 로지의 손글씨 서체 ‘로지손글씨’, 버추얼 빌런 류지의 손글씨 서체 ‘류지손글씨’로 구성된 3종 폰트 패밀리 「로지그자체」에 관해 다섯 명의 타입 디자이너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글. 이가희

사진. 이가희, 이정은, 이찬솔, 장연준

 

 

 

로지그자체÷(김주희+이가희+이정은+이찬솔+장연준)

 

「로지그자체」를 제작한 김주희 디자이너

 

 

이가희, 이정은, 이찬솔, 장연준 디자이너

 

 

@오디티

오디티는 인더스트리얼 무드보다는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로 전체적으로 밝고 깔끔한 분위기이다. 스틸과 블루포인트가 어우러진 장소인데, 로지가 가진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아 선정했다. (OTF 아님주의)

 

 

 

주희 홀가분해. 처음엔 1종만 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인데, 어쩌다 보니 3종까지 만들게 되면서 생각했던 일정보다 길어져 조금 힘들었거든. 그래도 내가 만든 첫 번째 자사서체라서 신기하고 기대가 커.

찬솔 1종에서 3종이 된 탄생 스토리를 좀 더 얘기해줘.

주희 당시 TDC 내부에서 가상세계나 AI, 메타버스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 때였고 이와 관련된 여러 회사와 미팅을 하던 시기였어. 그래서 제안할 때 로지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서체에 녹일 수 있을지 공부를 열심히 했지. 기존에 사용하던 서체도 찾아보고 그걸 바탕으로 이미지 맵핑도 하고, 기존 서체의 불편한 점이 어떤 것인지 등 질문지도 만들어보고.

 

 

 

 

가희 기존에 쓰던 건 무슨 폰트야?

주희 블랙핏이랑 로맨틱가이.

가희 로지그자체를 만들 때 기존에 쓰던 폰트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어?

주희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어. 아무래도 기존에 사용하는 것도 로지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골라서 사용했을 테니까. 그래서 어떤 부분들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했지. 일단 로맨틱가이는 이름부터 ‘가이’가 들어가서 남자가 쓴 느낌인데, 그렇다고 로지손글씨에 여성의 느낌을 담기보다는 어느 성별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만들었어.

 

정은 TDC에서 가장 MZ다운 사람이 주희라고 생각하는데, 로지도 MZ의 표본 같은 느낌이잖아. 로지를 공부하면서 이런 점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게 있었어?

주희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나는 로지보다는 류지가 더 맞는 거 같아. 왜냐면 로지는 엄청 밝고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거든. 로지와 비슷한 건.. 세계여행을 좋아하는 거?

연준 로지손글씨와 류지손글씨는 같으면서도 다른데,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어?

주희 류지손글씨는 처음 단계에서는 개발 계획이 없었어. 근데 개발하던 중간에 류지가 탄생했고, 내부에서 기획 중인 비트맵 서체가 류지와 어울릴 것 같았어. 로지와 류지는 하나의 인격체(?)인데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는 거라 같은 뼈대에 다른 포인트가 있는 게 어울렸거든.

가희 류지가 비트맵 서체와 어울리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주희 그게 되게 재밌는 부분인데, 처음 고딕을 만들 때부터 특징 페이지에 가상 인물 콘셉트이니까 글리치 효과를 주는 걸 많이 썼거든. 지금 보니까 그 부분이 류지까지 연결된 것 같아. 특히 류지는 성이 오 씨라서 풀네임이 오류지거든. 오류가 났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제일 잘 나타내는 게 비트맵 혹은 글리치 효과인 것 같아서 류지는 곧 비트맵 서체라고 생각했지.

 

정은 로지그자체 패밀리의 서체 3종이 모두 다른데 개인적으로 조금 더 마음이 가는 게 있다면?

 

주희 고딕이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제일 시간을 많이 들였거든. 공도 많이 들였고 검수도 진짜 여러 번 했어. 근데 고딕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손글씨도 기억에 많이 남아. 왜냐면 로지손글씨의 원도가 내 손글씨거든. 당연히 자소의 형태에는 로지라는 인물을 많이 반영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룩은 내 손글씨라서 애정이 많이 가.

 

 

 

 

찬솔 로지의 어떤 면모를 담고 싶었는지? 손글씨의 컨셉에 대해 말해줘.

주희 첫 번째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어느 성별에도 치우치지 않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게 콘셉트였어. 그리고 로지는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게 익숙하지 않다는 설정이라서 정갈한 글씨체보다는 조금 흘려 쓴 느낌이고, 획순이 조금 이상하더라도 그냥 허용하는 것으로 했지. 그래서 내가 원도를 직접 쓸 때도 일부러 펜을 길게 잡고 썼어. 예를 들어 따옴표의 형태가 뒤집혀서 어리숙한 느낌으로 접근했지. 로지의 외형적인 모습은 고딕체에 많이 담고, 손글씨에는 로지의 성격을 담았어.

 

 

로지그자체의 히든딩벳

 

 

연준 로지그자체에는 히든딩벳이 있잖아. 특수문자 쓰는 방식이나 특징은 뭐야?

 

주희 로지는 반려과일인 오렌지 ‘오씨’가 있는데 오씨를 쓰는 중간에 ‘’이라고 쓰게 되잖아. 그때 오씨의 모습을 딩벳으로 담았어. 마찬가지로 로지의 ‘’, 류지의 ‘’에서도 딩벳을 볼 수 있지. 이 글자들은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한글 대신 글립을 대체해서 디자인했고, 추가적으로 사용자 영역에도 포함했어.

 

정은 테스트할 때 로지를 아무래도 많이 써보게 되는데, 로지라고 쓸 때마다 얼굴이 자꾸 등장하니까 타이핑할 때 나를 보는 기분이 되게 재밌더라고.

 

 

 

 

연준 로지그자체라는 이름이 굉장히 특이하고 재밌는데, 어떻게 짓게 된 거야?

주희 네이밍은 로커스엑스에서 우리에게 고민해달라고 해서 내가 지었어. 처음엔 ‘로지 글자체’라는 이름을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로지그자체를 후보로 추가했지. 그 밖에는 이름이 오로지니까 ‘원앤온리로지’라는 것도 있었고. 다 기억은 안 나지만 한 10개 정도 보냈는데 그중에 로지그자체가 뽑혔어.

 

정은 폰트 패밀리와 고딕체가 이름이 같잖아.

주희 처음에 기획했던 것은 고딕 스타일 1종이었기 때문에 로지그자체는 폰트명으로 썼었어. 굵기 체계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는데, 어쨌든 패밀리로 확장이 되면서 손글씨 스타일이 생긴 거지. 로커스엑스에서는 로지그자체라는 이름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폰트 패밀리명과 고딕 스타일 폰트명을 동일하게 로지그자체로 한 거야. 다만 헷갈릴 수 있으니, 영문명에서는 Gothic, Script, Bitmap으로 구분했어.

 

 

 

 

찬솔 전체 과정 중에 제일 힘들었던 건 뭐야? 보통 클라이언트랑 의견이 부딪힐 땐 스트레스도 받고 일하기 힘들어지잖아.

주희 그런 점에서는 클라이언트와 잘 맞아서 힘들지 않고 오히려 너무 좋았어. 다만 힘들었던 거는 작업 일정이야. 2022년 4월에 시작해서 9월에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패밀리가 계속 추가되고 내부의 다른 일정이랑 겹치면서 계획보다 조금씩 뒤로 밀렸거든.

 

정은 내가 어렸을 때 사이버 가수 ‘아담’이 나왔었는데, 아담이 나오고 없어지는 과정을 보고 자란 세대니까 로지 서체를 만든다는 거에 사실 조금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어. 당연히 그때보단 기술도 많이 발전했고 시대가 변했으니까 로지와는 다르겠지만 말이야.

주희 가상 인물에 대해 어떤 생각이 있진 않지만, 변하고 있는 세상에 발맞춰서 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 옛날에는 가상 인물에 대한 서체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젠 나올 수 있게 된 거니까 선두 주자로서 이 시장을 잘 만들어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가희 나는 서체가 시대의 나이테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시간이 흘러 로지 서체만 보더라도 ‘2023년에 이런 인물이 있었지’ 하면서 그 시대를 떠올리면 좋을 것 같아.

 

연준 이쯤에서 타입나누기 공식 질문을 할게. 작업한 글자 중 로지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는?

 

주희 ‘안녕’인 것 같아. 제일 처음으로 만들었던 글자이기도 하고, 시안 작업할 때 진짜 많이 썼거든. 안녕 두 글자에 맞춰서 조금씩 파생 작업을 했고. 그리고 ‘’도 가장 로지답지.

 

정은 마지막으로 지금 계획 중이거나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주희 방대한 꿈이긴 한데, 고딕체를 많이 해봐서 명조를 한번 해보고 싶어. 그리고 가상인물 로지처럼 실재하지 않는 대상의 손글씨를 또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 사물과의 콜라보? 아니면 캐릭터와의 콜라보도 좋을 것 같아. <더 글로리>의 연진이 손글씨라거나! 대신 이런 건 빨리 나오는 게 중요한데, 당장 작업 시작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