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콘텐츠 [TYPE÷](타입나누기)는 윤디자인 TDC(Type Design Center)가 제작하여 새로 출시한 서체, 즉 타입(type)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입니다. 서체를 만든 담당 디자이너의 영감과 제작 의도,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동료 디자이너들의 관점은 또 어떨지. 하나의 서체를 주제로 그 서체와 어울리는 공간에서 타입 디자이너들이 대화를 나누고 이를 기록하여 들려드립니다.
열일곱 번째로 나눈 타입은 김미래 디자이너가 제작한 「클립」(🔗폰코에서 자세히 보러 가기)입니다. 바야흐로 숏폼(Short-form)의 시대, 스마트폰의 세로형 프레임 속에서 수많은 정보가 스치듯 지나가죠. 이 찰나의 순간, 시청자의 시선을 붙들고 메시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키기 위해 탄생한 서체가 있습니다. 바로 윤디자인의 신서체 ‘클립(Clip)’입니다. 1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세상에 나온 ‘클립’은 어떻게 우리 스크린 위에 안착하게 되었을까요? ‘클립’을 디자인한 김미래 디자이너를 만나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누었습니다.
글. 이정은
사진. 김지연, 서지원
클립÷(김미래+이정은+김지연+서지원)

@카페 mercy
Yoon 클립은 모던한 인상을 지닌 서체다. 그 모던함을 온전히 느끼기에 알맞은 계절과 장소를 찾다 4월의 따스한 햇살 아래, 합정역 인근 카페 머씨커피(Mercy Coffee)의 문을 열었다. 머씨커피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빽빽하게 채워진 일상 속에서 작은 틈을 내어주는 곳, 그 틈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복잡한 도시의 밀도 속에서도 답답함 대신 세련된 여백과 여유를 건네는 이곳의 분위기는, Yoon 클립이 좁은 화면 안에서 만들어내는 숨통과 닮아 있었다.


#01. ‘소나무’가 ‘클립’이 되기까지
정은: ‘클립’은 ‘긴 필름의 한 단편으로, 편집 작업 시 해당 장면에 필요하지 않아 잘라낸 필름 조각’이란 뜻이야. 요즘엔 통상 숏폼 콘텐츠와 같은 단편 동영상이나 짧은 음악 영상물을 비디오 클립이나 미디어 클립이라고 말하지. ‘클립’ 폰트명은 이러한 숏폼 동영상에 적합한 폰트 기획에서 시작한 게 맞지?
미래: 응. 처음부터 완전 숏폼 전용으로 생각하고 만든 폰트야.
지연: 처음에 기획했을 때부터 장체 스타일이란 건 명확했고, 스타일은 조금씩 바뀌었어. 원래 처음 이름이 뭐였지?
미래: 처음엔 이름이 ‘파인산스(PineSans)’였어. 소나무처럼 길쭉한 느낌을 내보려고 지은 가칭이지. 처음 시안은 지금보다 훨씬 레트로하고 곡선적인 특징도 엄청 강했어.
지연: ‘파인산스’였다가 폰트명이 ‘클립’으로 변경되었던 시점은?
미래: 초기 시안에서 디벨롭을 많이 하면서 이름도 고민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 자의 모양이 실제 클립이랑 좀 닮았더라고. 그러다 네이밍도 AI한테 물어보며 여러 후보를 봤는데, ‘클립’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이거다!” 싶었어. 영상 클립이라는 뜻도 있고, 사물 클립이랑 닮기도 했거든.
*@ - 영어로는 At sign, Commercial at이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골뱅이로 통칭한다.

지원: 클립이라는 콘셉트랑 장체 구조가 진짜 찰떡이야. 그런데 초기시안 문구 중에 ‘푸른 뱀’ 이런 거 있었잖아. 그건 무슨 뜻이었어?
미래: 아, 그건 진짜 내 마음대로였는데…(웃음). 원래 ‘조개껍데기는 녹슬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좋아해서 그걸 쓰고 싶었는데 시간이 좀 촉박했어. ‘성장하는’이라는 말은 ‘ㅅ’이랑 ‘ㅈ’의 특징을 보여주려고 넣었고, ‘푸른 뱀’은 아마 당시에 곧 2025년 을사년이기도 해서 조각조각 붙여 만들어진 문장이야.
정은: 아, 그런 의미가 있는 문장이었구나! 나는 어디 책에서 본 인상적인 구절인가 했더니, 본인 시안의 특징을 잘 보여주려고 직접 조합한 일종의 ‘미래표 팬그램*’이었네.
*팬그램(Pangram) - 어떤 음소 문자의 모든 글자를 사용해 만든 문장을 뜻한다. 주로 폰트 디자인에서 모든 글자의 모양을 보여주거나 자판 연습을 할 때 사용된다.


지연: 시안 단계에서 현재까지 오면서 많이 바뀐 부분은 어디이고, 시안 단계엔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반영되지 못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미래: 초기 시안에는 ㅅ, ㅈ꼴의 내릿점이 특징적이었고, 삐침 역시 세로 모임꼴에서는 휘어지는 각도가 좀 더 도드라지면서 도약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게 좋았어. 하지만 조금씩 발전시키며 특정 자소가 도드라져 보이기 보다는 좀 더 동일한 인상을 가지며 잘 읽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굵기 역시 초기에는 ExtraBold에 가깝게 디자인되었어. 최종 클립의 굵기 체계는 R, M, B 3개인데, Bold도 초기 시안 만큼 두껍진 않아. 초기에 설정했던 EB는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정은: 정리하자면 초기 시안은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면에서 접근을 했지만, 최종안으로 발전시키며 사용자 입장을 좀 더 고려해 범용성 차원에서 고민했다는 거지?
미래: 맞아. 근데 여전히 EB 굵기에 대한 미련이 남아.
지연: 그렇다면 추가적으로 패밀리를 확장해도 좋겠다. 현재 버전보다 좀 더 좁은 Narrow 버전에서 wide 버전까지도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정은: wide버전에 EB굵기면 현재와 인상이 매우 달라지겠는 걸. 엄청 궁금해진다.
지연: 클립체에 히든딩벳이 하나 들어가있어. 엄지 손가락을 올린 ‘좋아요’ 딩벳인데, 혹시 딩벳을 더 추가할 생각은 없었어?
미래: 사실 숏폼용이라 ‘구독’ 이나 유튜브를 떠올리는 그외 아이콘도 넣을까 했었지만, 그럼 너무 특정 플랫폼을 겨냥하는 것 같은 인상이라 최종적으로는 빼는 게 좋겠다 생각했어.
정은: 역시 사용자 입장.
지원: 역시 참디자이너.
정은: ‘좋아요, 말고 ‘싫어요’도 있었다면, 요즘 프로젝트 헤일메리 때문에 썸다운이 오히려 ‘좋아요’의 뜻으로 표현되고 있기도 해서 재밌었겠는데?


#02. 직선과 곡선의 밀당, '장력'의 조형
정은: 요즘 몇 년 새 장체 폰트들이 정말 쏟아져 나오다시피 하잖아. 그 수많은 장체 사이에서 ‘클립’만이 가지는 차별점은 뭐라고 생각해?
미래: 다른 회사 장체들은 아무래도 공간이 좁다 보니까 주로 직선적인 느낌이 많더라고. 나는 반대로 곡선을 좀 더 넣고 싶었어. 상세페이지에도 ‘유연하고 경쾌하다’는 문구가 있는데, 그런 발랄한 느낌이 차별화 포인트라고 생각해. 특히 세로획에서 가로획으로 꺾이는 부분이 약간 통통하고 부드럽게 꺾여서 직선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곡선의 유연함이 가미된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
정은: 맞아, 그게 가장 특징적이야. ㄴ, ㄷ, ㅁ, ㄹ 처럼 왼쪽 세로획에서 오른쪽 가로로 꺾어지는 부분을 둥글고 통통하게 처리해서 좌우로 비트는 장력이 느껴진달까? 그런데 의외로 영문(라틴)은 그런 조형적인 특징을 덜어내고 좀 더 모던하고 중립적인 느낌이 들어. 이건 의도한 거야?
미래: 영문까지 그런 언밸런스한 특징을 다 넣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겠다 싶었어. 한글은 획이 많지만 영문은 단순한 구조니까, 자칫하면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거든. 오히려 더 모던하게 가서 사용 범위를 넓히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라틴 스펙을 늘리는 방향을 선택했어.
정은: 역시 연차가 쌓이면 덜어낼 줄 알게 되는구나. 만약 지원이(참고-정직원 4개월차) 했다면 영문에 어떻게든 한글 특징을 다 끼워 넣으려고 고생했을 텐데(웃음).
지원: (웃음) 맞아. 나 같으면 뭐라도 하나 더 넣으려고 했을 거야.
지연: 라틴 스펙을 잡을 때 범용성을 생각한 게 좋은 수였던 것 같아. 자막용으로 쓸 때 다양한 표기가 가능하니까. 혹시 한글 자소 중에 특별히 애정하는 건?
미래: ‘ㄹ’이 가장 마음이 들어. ‘김미래’라는 내 이름에도 ‘ㄹ’이 들어가고, 폰트명인 ‘클립’에도 ‘ㄹ’이 들어가서인지 가장 애착이 가는 자소야.
정은: 작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예를 들어 조형적으로 풀리지 않았던 지점이 있었다거나, 스케줄 관리가 꼬였다거나.
미래: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실수인데. 클립이 라틴 확장 영역도 가지고 있어 자꾸 막판에 커닝이 하나씩 빠지는 거야. 그래서 폰트 변환 요청을 너무 많이 해 팀장님께 너무 죄송하더라고. 앞으로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몇 번을 다짐했어.

#03. 15초의 승부사, 읽히는 서체인가 보여지는 오브제인가
정은: 숏폼 영상은 순식간에 화면이 지나가기 때문에 찰나의 가독성이 생명인데, 클립은 읽혀지는 서체 그리고 보여지는 오브제에서 어떤 쪽에 더 무게감을 줬어?
미래: 클립은 제목용처럼 작업하긴 했지만, 결국 ‘읽히는 서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속공간을 시원시원하고 넓게 설계해 잘 읽히기 위해 노력했지.
지연: 만약 직접 ‘클립’을 써서 릴스를 만든다면 어떤 영상을 만들고 싶어? 브이로그? 챌린지? 정보 전달? 클립를 잘 돋보이게 해주는 장르는?
미래: 브이로그가 아닐까 ‘클립’의 곡선이 주는 느낌이 차가운 영상보다는 따뜻한 계열의 브이로그에 포인트로 잘 어울릴 것 같아. 정보 전달 영상은 감정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딱딱한 직선적인 서체가 어울릴 것 같고, 클립은 그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영상에 쓰고 싶어.
지원: 어제 우빈님이 그러더라고. 미래님이 만든 건 다 미래님처럼 ‘날씬날씬’하다고.
정은: 맞아, 미래가 만든 폰트들은 단정하고 잘 정리된 느낌이 있어. 미래가 동글동글하고 기하학적인 산스 느낌의 가변 서체를 만들 것 같진 않거든.
미래: 알게 모르게 내 취향이 들어가나 봐.
정은: ‘클립’은 총 3종인데, 전에 ‘말랑슬라임’ 타입나누기 할 때, 미래가 처음으로 3종 패밀리 작업을 해서 너무 힘들었다고 했던 기억이 나. 그때 고생했던 경험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되었는지?
미래: 이미 해본 경험도 있고, 제작툴과 스펙 차이가 있어서 훨씬 수월하긴 했어. 우선 ‘말랑슬라임’은 만자 스펙이었고, 클립은 2,780자 스펙인 부분에서 부담이 덜했지. 그리고 ‘말랑슬라임’은 폰트랩*으로 해본 첫 패밀리 폰트였는데 ‘클립’은 글립스*로 작업하면서 이미 글립스로 다른 전용서체 패밀리를 만들어봤기 때문에 좀 더 무난하게 확장할 수 있었어.
* 폰트랩, 글립스 - 폰트 디자인을 하기 위한 대표적인 툴
정은: 미래가 ‘클립’ 작업이 끝나기 무섭게 현재 전용 서체 작업들을 밀도높게 헤쳐나가고 있는 중이야. 현재 타입팀의 든든한 허리로서 중압감은 없어?
지연: 허리 디스크… (모두 웃음)
정은: 안돼!!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겠다. 다치지 않게 잘 관리해드리겠습니다.
미래: 중압감을 느끼기도 전에 작업할 게 많다 보니 오늘 끝내야 될 거 제대로 빨리 끝내자란 마음으로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고 있어.
정은: 지원이 미래의 옆자리인데, 옆에서 지켜본 미래 선배는?
지원: 진짜 바빠보여. 거기에 나까지 보태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거 여쭤봐도 될까요?” 물어보고. 그럼 자기 일 하다가도 늘 꼼꼼하게 봐주고 알려주거든. 난 진짜 미래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난 인턴 과제 끝나면 나 혼자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었어, 난 멀었어! 나 계속 막내하고 싶어!
미래: 이제 독립하셔야 합니다! (웃음)

#04. 붓을 잡고 ‘컨트롤 Z’를 잊는 시간
정은: 미래 하면 또 음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잖아. 미래가 인턴일 때 실리카겔 추천해 줘서 나도 덕분에 팬 됐거든. 이번 작업하면서는 많이 들었던 음악이나 요즘의 미래 플리를 알려줘.
미래: 요즘은 일본 밴드를 많이 들어. 얼마 전에 원오크락(ONE OK ROCK) 콘서트도 다녀왔고, 히게단(Official髭男dism)도 자주 들어. 그냥 거의 밴드 음악만 듣는 것 같아.
정은: 밴드 음악도 좋아하고, 주말에는 지원과 함께 서예 하러 다닌다며? 지원이랑 토요일까지 만나는 사이라니. 대단해. 주말에 어떤 마음으로 붓을 잡는지 궁금해.
미래: 응, 주 6일을 만나(웃음). 서예를 하면 잡생각이 안 들어서 좋아. 붓은 디지털 작업처럼 ‘뒤로 가기(Ctrl+Z)’가 안 되잖아. 한 번 획을 잘못 그으면 끝이니까, 그 긴장감이랑 집중력이 좋아. 지금은 판본체를 배우고 있는데 왜 이렇게 내 마음대로 선이 안 그어지는지. 공교롭게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전용서체 프로젝트 중에 붓글씨를 기반으로 한 게 있어서 학원에서 도움을 받기도 해. 최종적으로는 궁체까지 배워보고 싶어.
지원: 미래님 진짜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미래님은 그동안 포트폴리오를 보면 기사의 맹세, 모아이, 말랑슬라임까지 굉장히 특징적이고 장식적인 요소가 있는 제목용 폰트부터 클립 같은 모던한 스타일까지 다양하게 섭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 이제 다음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정은: 맞아. ‘기사의 맹세’부터 ‘클립’까지, 점점 더 정제된 스타일로 가고 있는 미래의 다음 작업은 본문용 서체?
미래: 예전엔 제목용 폰트가 취향이라 생각해서 컨셉츄얼한 것만 하고 싶었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결국엔 오래 사용되는 폰트가 살아남은 것 같아. 언젠가는 많은 사람이 오래오래 찾는 모던한 본문 서체에 도전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본문용 서체라 많은 공부가 되고 있어.
지연: 올해의 목표 혹은 버킷리스트를 하나만 공개한다면?
미래: 매년의 다짐이긴 하지만 영어공부 하기야. 두 가지 어플을 병행하고 있는데, 꾸준히 해보려고 해. 그래서 언젠가 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현지인과 조금 더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해 보고 싶은 바람이 있어.
정은: 좀 더 큰 꿈으로는10년 안에 ATypeI*에 연사로 영어 말하기… 기대할게!
*ATypeI (Association Typographique Internationale)는 타이포그래피와 서체 디자인을 위한 글로벌 비영리 단체로, 1957년부터 매년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Yoon 클립 | FONCO
Yoon 클립 | Yoon 클립은 장체 스타일의 캐주얼한 고딕 서체입니다. 글자 폭을 효율적으로 설계하여 좁은 모바일 화면에서도 많은 정보를 깔끔하게 전달합니다. 영상의 핵심을 담아낸 클립처럼,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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