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6.

[TYPE÷] 탄탄히 단련한 서체 「초월」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

타입나누기 No.9 초월체

 

2023년 연재 콘텐츠 [TYPE÷](타입나누기)는 윤디자인그룹 TDC(Type Design Center)가 제작하여 새로 출시한 서체, 즉 타입(type)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입니다. 서체를 만든 담당 디자이너의 영감과 제작 의도,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동료 디자이너들의 관점은 또 어떨지. 하나의 서체를 주제로 그 서체와 어울리는 공간에서 타입 디자이너들이 대화를 나누고 이를 기록하여 들려드립니다.

 

아홉 번째로 나눈 타입은 장연준 디자이너가 제작한 「초월」(🔗폰코에서 자세히 보러 가기)입니다. 한계를 뛰어넘은 힘이 느껴지는 서체 「초월」에 관해 세 명의 타입 디자이너와 한 명의 에디터가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글. 정이현

사진. 문하나, 박현준, 장연준, 정이현

 

 

 

초월÷(장연준+문하나+박현준)

 

「초월」을 제작한 장연준 디자이너

 

문하나, 박현준 디자이너 그리고 정이현 에디터

 

 

@오대마

부디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이곳의 ‘대마’는 건강식품으로 흔히 섭취하는 헴프씨드로, 대마초의 씨앗을 의미한다. 카페 오대마는 대마초 씨앗 추출물로 커피와 디저트를 만든다. 이런 강렬한 콘셉트는 마찬가지로 강렬한 인상의 초월체와 제법 잘 어울린다. 같은 씨앗을 그리고 서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서로 닮은 것 같다.

 

타입나누기 초월체 오대마
타입나누기 초월체 오대마

 

 

이현 먼저 첫 질문, 출시한 소감이 어떤지.

 

연준 초월체를 출시하기까지 2년 가까이 걸린 것 같아. 물론 이것만 만든 건 아니지만, 처음 기획한 게 2021년 12월이었거든. 그러다 보니까 기획 방향도 많이 바뀌었고, 처음 형태에서 많이 달라졌어. 그렇게 만들다가 말다가 작업 기간이 굉장히 오래 됐는데, 드디어 출시했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 않고 그냥 아직 내 컴퓨터 안에 있는 하나의 파일 같아. 그래서 실감하려면 아무래도 밖에서 많이 마주쳐야 할 것 같아. 또 그랬으면 좋겠고.

 

현준 자사 신서체가 처음이잖아. 그래서 더 남달랐을 것 같아.

 

하나 형태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이 바뀐 거야?

 

연준 시옷꼴 자체가 바뀌었고, 지읒꼴도 꺾임지읒에서 갈래지읒으로, 디테일이 좀 바뀌었어. 원래 초성과 종성의 형태를 다르게 쓰는 글자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하다 보니까 현실적인 문제에 좀 부닥치게 되더라고. 예를 들면, ‘닌’ 자 같은 경우에는 초성 니은과 세로 기둥의 돌기, 종성 니은의 돌기 같은 부분이 다른 형태를 갖게 되면 시각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해. 또 왜 달라야 하는지 이유를 부여하기가 애매해서, 그런 부분을 좀 정리해나가면서 디자인했어.

 

 

초월체 - 솟 찾 닌 격 룰

 

 

현준 근데 지금 바뀐 게 더 좋은 것 같아.

 

하나 수정한 게 많다고 했는데, 그중에서 이건 진짜 수정하길 잘했다고 느껴지는 포인트가 있을까?

 

연준 수정 전에는 가로모임과 세로모임의 종성 형태가 달랐어. 어떻게 보면 실수라고, 어떻게 보면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초성과 종성을 다르게 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이걸 검수 과정에서 통일하는 방향으로 변경했지. 지금 기역에는 꺾인 표현이 있는데, 리을은 자연스럽게 넘어가거든. 이런 것들은 통일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룩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이해되는 선에서 맞추는 걸로 마무리가 됐어. 이걸 다 맞추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폰트가 될 것 같아서, 초월체만의 개성이라 굳이 고치고 싶지 않았어.

 

하나 이유가 있으면 통일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해. 내 기억에는 예전에 봤던 초월의 시안은 약간 붓의 느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결과물은 붓 느낌이 전혀 아니더라고. 아마 그런 수정 과정들을 거치다 보니까 이렇게 완성되지 않았나 싶어.

 

현준 하나 디자이너가 말한 대로 어딘가는 붓의 흘림 느낌도 나고, 또 시옷이나 지읒 같은 데에서는 날카로운 납작펜 느낌도 나. 서체의 룩이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거든. 혹시 초월체를 만들면서 형태적인 모티브에 영감을 받거나 참고했던 게 있어?

 

연준 맞아, 있어. 사무실에 옛날 레터링들이 담겨 있는 엄청 두꺼운 파란 책(=『한글 레터링 자료집 1950-1985』, 프로파간다) 있잖아. 거기서 어떤 글자를 발견했는데, 세로획 보고 폰트로 만들면 되게 멋있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똑같이 만들면 당연히 안 되니까 세로획의 형태는 참고하되, 구조나 다른 자소들의 형태를 달리해서 초월체를 만들게 된 거야.

 

하나 그 책이 진짜 영감을 많이 주는 것 같아. 사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영감을 받아 만든 서체가 또 있거든. 그럼, 혹시 특문은 좀 특별한 부분이 있어?

 

연준 다른 서체들과 차별점을 준 건 느낌표야. 보통 좌우 대칭 형태로 느낌표를 만드는데, 초월체는 가로쓰기 형태에 맞게 느낌표가 우측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어.

 

 

초월체 - 폰트는 폰코!

 

 

하나 보통 느낌표는 세로획을 좀 따라가는 느낌으로 만들곤 하잖아. 근데 초월체의 느낌표는 완전히 다른 형태인데, 아까 말했던 의도처럼 여러 가지 형태들이 섞여 있으면서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나는 초월에서 되게 마음에 드는 부분 중의 하나가 흰색 공간들이 재미있게 빠져 있는 거. 폰코의 ‘폰’ 자 보면 피읖의 세로획이 기울기에 맞춰서 잘려져 있더라고. 그게 너무 재밌어.

 

연준 ‘몸’ 자에서도 중성 부분이 이렇게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잖아. 근데 미음도 똑같이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흰색 공간이 퍼즐처럼 들어가게 했는데, 특히 리을에서 그런 부분이 도드라져. 나도 마찬가지로 이런 부분이 재밌어서 이렇게 만들었어.

 

 

초월체 - 헬스를 한 몸?

 

 

현준 초월체가 또 두꺼워서 그런 느낌이 잘 사는 것 같아.

 

하나 다음 달에 출시 예정인 신서체도 이런 매력 포인트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 근데 초월체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니까,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

 

이현 사실 처음엔 초월체가 아니었다고 들었는데…

 

현준 바뀐 네이밍 비화에 대해서 얘기해줘.

 

연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 난 네이밍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무게감 있는 이름을 붙이면 진중해 보이고, 유머러스한 이름을 붙이게 되면 코믹하게 보이는 게 서체라고 생각해. 그래서 디자인을 한 사람이나 회사에서 충분한 고민을 갖고 정하는 게 중요한데, 나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현준 디자이너가 추천해준 걸로 정하게 됐어. 초월 어떠냐고 하는데,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바로 들고 기획전략실로 달려갔지.

 

하나 내가 느끼고 있던 이 폰트의 형태는 붓이었단 말이야. 여러 이름 중에서 초월이라고 들었던 순간,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그전에는 영어로 된 이름도 많았는데, 한글 이름이 더 매력 있다고 느껴지더라고.

 

현준 나도 옆에서 지켜보면서 여러 네이밍을 들었는데, 뭔가 좀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라고. 아까 말했듯이 붓의 흘림 느낌도 있다 보니 글자 룩 자체가 동양적이고 한국적이라 한글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러다 문득 초월이 떠오른 거야.

 

하나 연준 디자이너가 TDC에서 가장 라틴을 좋아하는 서체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는데, 초월체의 라틴으로 쓰면 좋을 것 같은 문장이 있어? 폰코 상세 페이지에는 영어 문장이 없더라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타입나누기에서 보여주면 어떨까 싶어.

 

연준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라는 니체의 말이 생각나. 또 나는 소문자 g가 마음에 들어서, “struggle”이라는 단어도. 힘듦이 나를 곧 초월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생각이 났어.

 

 

초월체 -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struggle

 

 

하나 워낙 라틴을 좋아하잖아. 초월체의 라틴은 어떤 부분이 좀 특별해?

 

연준 라틴을 디자인하면서 진짜 어려웠던 점은 획대비가 굉장히 적거든. 한글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라틴도 최소한으로 넣으려 했는데, 왜 그랬냐 하면 세리프 서체 계열에서 획대비가 없는 서체가 드물거든. 그래서 레퍼런스를 찾기 너무 힘들었어. 거의 없거든.

 

현준 맞아. 레퍼런스가 없어.

 

하나 획대비가 꾸밈의 요소기도 하잖아.

 

연준 두께를 어느 정도 가져가되 획대비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게 너무 힘들었어.

 

하나 그럼 이제 초월체가 레퍼런스가 되겠네.

 

연준 그렇게 되면 너무 좋겠다. 여기 d 같은 경우에 꺾여서 들어가는데, 이런 부분이 한글의 시옷과 좀 닮아있어.

 

하나 보통 이런 연결은 많이 없지 않아?

 

현준 이것도 새로운 레퍼런스가 될 수 있겠네.

 

하나 확실히 많이 판 게 작게 봐도 보이더라고.

 

현준 보통은 이런 잉크트랩(ink trap, 작은 글자를 인쇄할 때 잉크가 뭉개져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획이 맞닿아 있는 부분을 파거나 홈을 더 내주는 방식)을 넣을 때 획의 쉐이프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넣는데, 초월체는 디자인적인 요소로 들어간 게 난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아. “나 잉크트랩 넣었어” 완전 이런 느낌이어서 그게 이 서체의 인상을 더 살려주는 것 같아.

 

 

 

 

연준 이 서체를 만들 때, 가장 처음에 만든 글자가 ‘탄’이었어. 그래서 그런지 가로모임 티읕이 좀 많이 특이하거든. 디귿처럼 진행 방향대로 파여 있어. 또 세로획이 가로획을 뚫고 나왔고. 작게 보면 붙어 있고, 크게 보면 떨어져 있는 그런 형태야.

 

하나 되게 숨긴 요소가 엄청 많네.

 

연준 왜냐하면 작업 기간이 엄청 길어서, 이거 넣었다가 저거 넣었다가, 이렇게 생각했다가 저렇게 생각했다가…

 

현준 초월체가 출시돼서 이제 쓰일 텐데, 어느 곳에서 쓰면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한 거 있어? 매체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브랜드가 될 수도 있고.

 

연준 일단 당연히 헬스장에서 쓰였으면 좋겠어. 너무 진지하게만 말고 좀 웃기게. “파워프레스 중에 악 소리 나야 정상” 이런 거.

 

하나 역시 인프피스러운 말장난을 좋아하네.

 

연준 또 요즘 건강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음식점 같은 곳에서도 쓰였으면 좋겠어.

 

하나 경고 문구에도 어울리는 것 같아. “조심해!” 이런 거.

 

현준 책 표지 타이틀로도 좋을 것 같아.

 

하나 만약 책에 들어간다면 어떤 종류?

 

연준 20대에 100억 버는 법.

 

현준 그건 본인 희망 아니야?

 

연준 너무 파워풀하지 않아? 20대에 100억 벌기.

 

하나 확실히 뭔가 외치는데 장난스러운 말에 쓰였으면 좋겠다는 거지.

 

 

 

 

연준 근데 일단 기획은 장난스러운 건 빼고 되게 무겁고 진중한 서체라고 소개할래.

 

현준 난 오히려 되게 문학 쪽이나 그런 데에 쓰여도 잘 어울릴 것 같아. 혹시 본문용으로 웨이트 확장할 생각은 없어?

 

연준 있어. 나는 있는데, 여건상 가능할지는 모르겠어. 그리고 초월체가 워낙 제목용이라 가능한 특징들이 많은데, 이걸 다 빼고 본문용으로 바뀌었을 때는 일반적인 느낌이 날까 봐. 과연 그게 초월일까 하는 의문이 들 것 같아.

 

이현 그럼 초월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자는?

 

연준 아까 얘기해버렸는데, ‘탄’! 제일 처음에 만든 글자기도 하고, 이 서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글자라고 생각해.

 

이현 탄탄한 서체의 느낌이랑 되게 잘 어울려.

 

하나 그동안 게임 서체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초월체도 게임에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연준 맞아, 게임에 진짜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하나 우리 회사가 게임 전용서체를 많이 만들고 기존 자사 서체 중에서도 많이 나가는데, 이제 초월체도 그중에 하나가 될 것 같아.

 

현준 우리가 일반적인 세리프 계열로 만드는 게임 서체와 룩이 좀 비슷한 느낌인데, 어쨌든 목적이나 컨셉이 다르잖아. 작업할 땐 어땠어?

 

연준 보통 게임 서체는 웬만하면 레귤러나 미디움 굵기 정도에서 그쳐야 하잖아. 너무 굵어지면 게임 화면 내에서, 특히 모바일에서 적용되었을 때 글자가 완전히 뭉쳐 보이게 되니까. 근데 이건 그런 고려 없이 내 마음대로 웨이트를 많이 늘려서 진행할 수 있었어.

 

현준 그래서 룩이 좀 더 자유롭게 나온 것 같아.

 

 

타입나누기 초월체

 

 

이현 초월체는 신체의 에너지를 글자로 표현한 거잖아. 혹시 글자로 표현하고 싶은 또 다른 게 있을까?

 

연준 초월체를 만들 때 되게 불 속성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신체의 에너지라서. 그래서 이제 다른 원소인 물이나 풀 같은 원초적인 것들을 글자로 만들어보고 싶어. 같이 놓고 보면 좀 재밌을 것 같고.

 

하나 그래서 지금 물로 서체 만들고 있잖아, 언제 나와?

 

연준 리퀴드 산스라고, 12월까지 굵기를 어떻게 할지 배리어블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할지 고민하고 있어.

 

하나 스포 조금만 해줘.

 

연준 라틴 폰트인데, 햇볕에 반사되는 걸 윤슬이라고 하잖아. 그 윤슬의 형태를 영문의 잉크트랩에 적용해서 글자가 조판되었을 때 전체적으로 윤슬이 반짝거리는 그런 형태를 가져가려고 해.

 

하나 재밌을 것 같아. 우리 회사에서 작업했던 것 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건 어떤 거야?

 

연준 진짜 힘들었는데 그래서 가장 재밌었고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는 건 역시 고딕. 현대카드 유앤아이뉴. 그때 고딕을 배워놓은 게 알게 모르게 많이 쓰이더라고. 명조를 하더라도 적용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서 도움이 많이 됐어.

 

이현 그럼, 마지막 질문은 이걸 물어보고 싶어. 서체 디자이너로서 초월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연준 라틴 서체에서는 굉장히 많이 보이는데, 배리어블이나 합자 같은 게 한글에는 많이 부족하거든. 그래서 배리어블도 엄청 폭넓고, 합자도 엄청나게 많은 오버 스펙으로 하나 만들어보고 싶어.

 

 

타입나누기 초월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