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0.

[TYPE÷] 따끈따끈 신규 폰트 「벨리곰체」에 관해 나눈 TDC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

[타입나누기] 벨리곰체

 

2023년 새해를 맞아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 콘텐츠 [TYPE÷](타입나누기)는 윤디자인그룹 TDC(Type Design Center)가 제작하여 새로 출시한 서체, 즉 타입(type)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입니다. 서체를 만든 담당 디자이너의 영감과 제작 의도,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동료 디자이너들의 관점은 또 어떨지. 하나의 서체를 주제로 그 서체와 어울리는 공간에서 타입 디자이너들이 대화를 나누고 이를 기록하여 들려드립니다.

 

 

 

 

첫 번째로 나눈 타입은 방성재 디자이너가 제작한 「벨리곰체」(🔗폰코에서 자세히 보러 가기)입니다. 벨리곰처럼 귀엽고 행복한 곰돌이가 가득한 카페 해피베어데이 본점에서 윤디자인×벨리곰으로 탄생한 「벨리곰체」를 다섯 명의 타입 디자이너가 다시 나눠봤습니다.

 

 

글. 이가희

사진. 이가희, 이정은, 이찬솔, 장연준

 

 

 

벨리곰체÷(방성재+이가희+이정은+이찬솔+장연준)

 

「벨리곰체」를 제작한 방성재 디자이너
장연준, 이가희, 이정은, 이찬솔 디자이너, 그리고 벨리곰

 

@해피베어데이 본점 cafe

 

 

정은 처음 이 서체를 기획하고 시작할 때는 이름이 벨리곰체가 아니었잖아. 어쩌다 벨리곰체를 만들게 된 거지?

 

성재 2022년 초에 자사서체 시안을 진행했었는데, 그때 나왔던 수십 개의 시안 중에서 TDC 내부 투표로 출시되면 가장 인기 있을 것 같은 디자인 1위로 뽑혔지. 그 당시 모든 프로젝트는 민주주의로 진행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투표로 다 결정했잖아.

 

연준 아주 민주적인 타입의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네.

 

 

벨리곰체 더 비기닝

 

 

성재 이 서체는 네모난 유리병에 하리보 젤리 같은 애들이 꽉 차 있는 콘셉트로 했어. 그래서 자소가 약간 우겨져 있는 느낌으로 디자인했고. 처음 가칭도 ‘구미베어’였는데, 구미베어가 상품명이라서 알맞은 다른 이름을 찾던 중에 벨리곰에서 콜라보할 업체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이메일을 썼지. 벨리곰도 통통하고 이 서체도 통통하니까 서로 잘 맞을 것 같았는데 바로 러브콜이 왔어.

 

가희 결이 잘 맞는 친구를 찾은 느낌이네. 그러면 이런 스타일의 서체를 왜 만들고 싶었던 거야?

 

 

 

 

성재 이 서체만 사용하더라도 그래픽 디자이너가 만든 것 같은, 가독성보다는 한 글자만 써도 엄청 주목되는 와우포인트를 주고 싶었거든.

 

정은 그럼 가장 애정이 많이 가거나 특징이 두드러지는 딱 한 글자만 고르라면?

 

성재 ‘벨’이 제일 좋은데, ‘ㅂ’이 딱 곰의 얼굴 같고 ‘ㄹ’도 글자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 같아서 그게 함께 있는 글자라 좋아. 좀 더 특징 있는 글자를 고르자면 구겨져 있는 느낌이 잘 살아있는 ‘꽃’.

 

 

 

 

정은 우리가 시안 작업을 하면 몇 글자만 했다가 그 느낌을 보고 좋으면 파생을 시작하잖아. 빈출자를 파생하는 과정에서 가장 안 풀렸던 글자가 있는지 궁금해. 나는 ㄱ꼴이나 ㅅ꼴같이 삐침이 있는 거를 어려워하는 편이거든.

 

성재 의외로 ‘ㄹ’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 ‘ㄹ’이 위아래 획은 두껍고 가운데는 엄청 얇은데 마음에 드는 곡선을 만드는 게 진짜 어려웠어. 다들 본인만의 곡선감이 있잖아. 나는 그걸 찾는 게 어려웠고, 끝 모서리도 곡선이니까 핸들을 조정하는 게 엄청 힘들더라고.

 

정은 기존에 우리 TDC에서 만들었던 신서체랑 다르게 기업의 캐릭터랑 같이 콜라보를 한 거잖아. 그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좀 있을 것 같은데.

 

성재 벨리곰 측에서 요청해서 달라진 부분이 좀 있는데, 처음에 제작했던 것보다 가독성 부분을 많이 개선했어. ‘ㅓ’ 계열의 형태일 때는 괜찮은데, ‘ㅕ’일 때는 하나의 기둥에서 2개의 줄기가 나오니까 그 부분의 형태를 읽기가 좀 어려웠거든. 또 알파벳의 형태도 많이 달라졌고. 알파벳 ‘B’에 곰의 옆모습을 담은 시안도 있었는데, 비율이 벨리곰이랑 안 맞아서 일반적인 형태로 수정하고, 벨리곰은 딩벳에 넣는 것으로 최종 진행됐어. 그리고 글꼴연구소 피드백을 받으면서 ‘리’와 같은 ㄹ민글자도 가로모임은 위가 둥글고 세로모임은 위가 평평했는데, 그 부분도 모두 둥근 형태로 바꿨지.

 

 

시안B로 최종 결정!
벨리곰을 닮은 B에서 일반적인 형태로 최종 결정!

 

 

정은 우리가 보통은 2,350 기준으로 많이 작업하잖아. 그래서 벨리곰도 당연히 2,350자 스펙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만자(한글 11,172자 풀스펙을 줄여서 부르는 업계 용어)로 제작해서 더 힘들지 않았어?

 

성재 이걸 왜 만자로 했냐면 초중성 자소가 하나도 겹치지 않아. 공간 분배를 두 개로만 나눠서 계획했기 때문에 오히려 룰을 짜서 작업하기 수월했어. 그리드 안에 욱여넣은 젤리가 되도록 획과 획 사이에 18unit(폰트 제작 시 그리드의 간격 단위)씩 똑같이 떨어진 간격을 만들어주려고 했어.

 

찬솔 지금 사내 메신저 상태 메시지가 ‘고든’이잖아. 혹시 벨리곰체를 작업하는 동안엔 뭐였어? 아니면 한 줄로 표현하고 싶은 당시 기분이나.

 

성재 ‘뚝딱뚝딱’이라고 할 것 같아. 새로운 곳을 지어 나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스스로 이렇게 그릴까 저렇게 그릴까, 자소 하나도 일반적인 모양이랑 다른 걸 고민해야 했거든.

 

정은 새로운 곳을 지어 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떠오르는데, 학부 때 전공은 건축이었잖아. 건축학과 출신으로 서체 작업을 하면서 건축 공부를 했던 게 도움이 되기도 해?

 

성재 그런 것 같아. 건축도 도면 그릴 때 엄청 계획을 짜서 하거든. 각 공간을 쓰임에 따라 어떤 크기로 설정할지, 어디에 두면 나머지 공간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이런 부분들을 고민해. 꽉 차면 꽉 차는 서체일수록 건축이랑 비슷한 게 있는 것 같아. 벨리곰체도 꽉 차 있잖아. 하나의 공간에 집어넣었을 때 크기감이 눈에 그려지니까 그런 부분이 나에게 좀 더 쉬웠던 것 같아.

 

 

 

 

가희 글자만 봤을 땐 몰랐는데 굉장히 수학적인 젤리였네.

 

성재 옛날부터 그림 그릴 때 보면 미술하는 애들은 크게 두 가지 분류가 있었어. 감성적으로 잘 그리는 쪽과 깔끔하게 잘 그리는 쪽. 나는 후자였는데, 일부러 감성적으로 보이려고 획도 삐져 나가게 하고 액션을 과하게 주려고 해도 결국 마지막에 보면 라인 다 깨끗하게 만들어져 있고. 자유롭게 하려고 해도 수학처럼 나만의 규칙을 계속 세우고 틀을 만들게 되는 것 같아.

 

가희 이 부분은 조금 의외다. 내가 보기에는 항상 갇혀 있는 틀 없이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넘치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난 벨리곰체가 디스플레이적으로 굉장히 쓰기 좋은 폰트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이런 스타일의 서체가 많이 나오잖아. 본인이 생각하기에 벨리곰체의 대항마라고 생각하는 폰트가 혹시 있다면?

 

성재 대항마 진짜 너무 많은데, 폰코에 있는 팡팡체(🔗폰코에서 자세히 보러 가기)를 제일 의식했던 것 같아. 아무래도 폰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이기도 하고, 벨리곰체를 기획하고 작업하던 중에 먼저 출시된 폰트라서 시기적으로 의식이 될 수밖에 없었지.

 

가희 팡팡체의 이미지를 보니 생각나는데, 요즘 블렌더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잖아. 블렌더를 이용해서 벨리곰 목업도 작업한 걸로 알고 있는데, 프로그램 써보면서 어떤 점이 좋았어?

 

성재 완전 재밌었어. 올해 한 것 중에 이게 제일 재밌었던 것 같아. 블렌더 프로그램 자체가 게임 회사에서 쓰는 거거든. 근데 3D 프로그램과는 좀 다른 게 태블릿으로 그리듯이 만들 수 있어. 아이패드 브러시로 조각하듯이 그릴 수 있고, 내 그림 실력도 접목해서 할 수 있거든. 외형에 피부를 입히고 거기에 화장도 할 수 있고, 그리고 리깅이라고 해서 근육들과 관절을 넣을 수 있지. 무표정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 놓고 거기에 근육을 만들어서 넣으면 하나의 게임 캐릭터처럼 웃거나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거야. 이걸 이미지로 저장하면 다른 곳에서도 쓸 수 있게 되는 거고. 심지어 무료 프로그램이라서 요즘 게임 회사들도 이 프로그램으로 많이 넘어간다고 하더라고. 난 유튜브 강좌로 배웠는데 아주 재밌었어.

 

 

블렌더 프로그램으로 작업해본 벨리곰체

 

 

연준 다시 벨리곰체 얘기로 돌아가서, 아까 제일 좋아하는 글자가 ‘벨’이랑 ‘꽃’이라고 했는데, 그 밖에 알파벳이나 기호 중에서 공을 많이 들인 글자가 따로 있어?

 

성재 하트 기호가 제일 마음에 들어. 채워져 있는 복숭아 같다고 할까. 그리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이건 처음에 만들고 최종까지 한 번도 안 바뀌었어. 그리고 손 모양도 처음엔 직선적이었는데 곰돌이 손 같은 형태로 바뀌었고.

 

연준 퍼센트(%)랑 엠퍼센트(&)도 너무 귀여워.

 

 

 

 

정은 맞아. 이게 70년대라면 절대 못 나왔을 거야. 출력하면 까맣게 나와서 얇은 선이 표현이 안 될 테니까.

 

가희 마지막으로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살짝 말해줘.

 

성재 다음에는 벨리곰체보다 더 특이한 거 하고 싶은데, 뭐 할지는 아직 모르겠어. 콘셉트는 완전 다르지만 한 글자만 써도 멋진 서체를 만들고 싶어.

 

가희 오늘 벨리곰체에 관해 다양한 얘기를 나눠봤는데, 그동안 봐왔던 것보다 더 깊은 내용을 알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성재의 다음 프로젝트도 기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