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의 제목부터 극이 끝난 후의 엔딩 크레딧까지, 영화 한 편 안에서 ‘글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그 자체로서 영화의 메인을 차지하지는 않아도 작품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어 타이포그래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포스터는 작품을 단 한 장으로 압축해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그 안에 쓰이는 크고 작은 요소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고려해 디자인됩니다. 단 한 줄의 제목도 예외는 아니지요. 기존의 서체 중 어울리는 것을 골라 사용하거나, 이미지에 맞게 서체를 변형하거나, 필요에 따라 직접 레터링을 하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영화의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집니다.
포스터가 영화 한 편의 첫인상이라면, 타이틀 시퀀스는 관객을 향한 영화의 첫 말 걸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타이틀 시퀀스는 2~3분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관객의 흥미를 돋우며 영화 본편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예고해줍니다. 타이틀 시퀀스 안에서의 ‘글자’는 단순히 감독과 배우 이름을 올리는 것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지가 되기도 하죠. 특히 어떤 감독들은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어필하고, 더 나아가 하나의 스타일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소개해드릴 4명의 인물들처럼요.
장 뤽 고다르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는 1960년대 전반 프랑스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 운동을 이끌며 활동한 영화감독으로, 타이포그래피를 혁신적으로 다룬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아래의 영상은 장 뤽 고다르의 타이틀 시퀀스를 모은 것인데요. 감각적인 글자 활용이 인상적입니다.
출처: Youtube
출처: 위 영상 캡처
한편, 장 뤽 고다르 감독의 팬인 네덜란드의 디자이너들은 그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타이틀 시퀀스에 영감을 받은 서체를 디자인 한 것이지요. 2010년 공개된 이 서체는 이곳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 Atelier Carvalho Bernau Design
스탠리 큐브릭
20세기 영화사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은 산세리프 서체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Helvetica), Univers 등 군더더기 없고 명료한 타입페이스를 선호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기하학적인 산세리프 서체 Futura에 대한 선호가 각별해 영화에 자주 활용했습니다. 위 이미지의 <Eyes Wide Shut(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는 Futura Extra Bold가 사용되었습니다.
출처: Movie Title Stills Collection
여러 SF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2001: A Space Odyssey(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타이틀에는 Gill Sans가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면 ‘2001’의 표현입니다. 세로로 긴 숫자 ‘0’이 아니라 정원 형태의 대문자 ‘O’를 사용해 기하학적인 이미지로 디자인한 것이지요.
출처: Movie Title Stills Collection
Gill Sans Light의 숫자 0과 대문자 O 비교
쿠엔틴 타란티노
이번엔 극단적인 폭력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입니다. 그의 1994년도 작품 <Pulp Fiction(펄프 픽션)>의 타이틀 시퀀스에서는 ITC Benguiat가 사용되었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몇몇 작품에 같은 서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ITC Benguiat는 타란티노 감독의 모든 작품에 쓰이지는 않았지만, 워낙 그 인상이 강렬한 탓에 ‘타란티노 폰트’라고 불리기도 한답니다.
출처: Movie Title Stills Collection
우디 앨런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은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동일한 서체를 사용합니다. 검은 배경에 흰 글씨로 쓴 제목은 우디 앨런의 트레이드마크로 각인되어 타이틀만 보아도 그의 작품인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이지요. 그가 주로 사용하는 서체는 EF Windsor인데요. 서체 패밀리 중 EF Windsor Elongated 또는 EF Windsor Light Condensed가 사용됩니다.
EF Windsor가 쓰인 우디 앨런 영화 타이틀
출처: Movie Title Stills Collection
1977년작 <Annie Hall(애니홀)>
1984년작 <Broadway Danny Rose(브로드웨이 대니 로즈)>
1987년작 <Radio Days(라디오 데이즈)>
1991년작 <Shadows and Fog(그림자와 안개)>
1995년작 <Mighty Aphrodite(마이티 아프로디테)>
2005년작 <Match Point(매치 포인트)>
2011년작 <Midnight in Paris(미드나잇 인 파리)>
2016년작 <Café Society(카페 소사이어티)>
지금까지 장 뤽 고다르, 스탠리 큐브릭, 쿠엔틴 타란티노,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타이틀 디자인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타이포그래피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이 네 감독들의 작품은 디자인적으로도 참고할 만할 듯합니다.
더욱 다양한 영화 타이틀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보시고 싶은 분들을 위해 아래의 사이트 두 곳을 추천해드릴게요. 작품별 타이틀 디자인 및 사용 서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타이틀 디자인을 통해 영화의 이미지를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답니다.(아쉽게도 영문 위주이며, 모든 영화가 다 있지는 않습니다.)
출처: TypoCine
출처: Movie Title Stills Collection
타이틀 시퀀스에서 느껴지는 감독만의 스타일,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배경이나 자막과 같은 극 중 요소, 영화가 끝난 후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서도 서체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다양한 영화 속 타이포그래피, 한 번씩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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