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8.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읽기 우리는 정말 자급자족하는 삶을 꿈꾸는가




얼마 전에 2015년의 청년 실업률이 발표되었나 봅니다. 9.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하지요. 취업자 10명 중 2명이 1년 이하의 계약직이라는 통계청의 자료까지 생각해보면 9.2%보다 훨씬 많은 청년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단 비취업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현재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느낍니다. 고용 불안이라고 하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언제나 잡코리아나 인크루트 등 취업 사이트의 정보를 주시하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업데이트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한 책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입니다. 한참 오래전에 읽었어야 했던 책이었음에도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읽었지만 좋은 시기에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일찍 읽었다면 헨리가 왜 자급자족하며 숲에서 혼자 살기로 결심했는지 깊이 있게 느끼지 못 했을 겁니다. 이제 월든을 천천히 읽어볼 건데요 읽기 전에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년 7월 12일 ~ 1862년 5월 6일), ©위키백과




0.월든을 읽기 전 사회 공감 - 우리는 근로자인가 노동자인가


연초가 되면 계획을 세웁니다. 우리가 하는 계획은 재작년보다 작년이, 작년보다 올해가 더 구체적인 것 같습니다. 올해 책 몇 권 읽기나 한 달에 한 번 여행하기, 외국어 마스터하기 등 사고를 넓혀주거나 자신의 지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만 계획하진 않습니다. 연봉 얼마 만들기나 어떤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전문 분야 만들기, 저축을 통해 얼마 모으기처럼 더 나은 내년을 위해서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점점 계획을 세울 수가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작년 계획이 바로 올해의 계획이 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째 같은 계획을 계속 다이어리에 옮겨 적고 있는지 알 수 없군요. 계획을 실천하는 일, 다시 말해서 꿈을 이루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일까요? 


우연히 찾아보게 된 개념이 있습니다.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점인데요. 여러분은 두 단어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노동자는 꼭 육체적인 노동을 말하는 것 같고 근로자가 더 근대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맞나요? 저도 그런 줄만 알았는데요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더군요. 노동자(勞動者)는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 근로자(근로자)는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의 대가로 받는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개념상의 차이점은 크게 느끼지 못하실 테지만 재해석해보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 파는 일을 하기 때문에 능동적입니다. 반면에 근로자는 회사나 국가에 종속되어 일을 하기 때문에 수동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합니다. 


노동자를 몸을 쓰는 육체적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역사적인 배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개인이 돈을 버는 수단은 몸을 쓰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기술력을 가지고 몸을 움직여 성과를 내는 일, 즉 광부나 봉건주의 사회의 농노, 자본주의 사회의 일용직 근로자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노동계약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노동력을 팔았을 겁니다. (실제 계약서가 존재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빨리 일을 끝내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일을 해야 했겠죠. 





노동자의 개념을 현대로 가져오게 되면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고용주와 동등한 관계를 가지며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근로자는 소속된 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계약된 임금을 받아 생활합니다. (제 주위 사람들 중에 가장 가까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프리랜서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대적 개념으로 worker를 노동자와 근로자로 나눌 수 있는데, 지레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럼 우리는 노동자일까요? 근로자일까요? 자영업자나 소규모 스튜디오를 직접 운영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는 회사에 종속된 근로자이겠죠. 하지만 근로자이면서도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회사에서 고용한 근로자이지만 고용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고용 환경의 개선을 위해서 정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현대 근로자는 자신이 속한 회사의 시스템에 잘 맞춰 일을 수행하는 단순한 기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 이외에 다른 것을 할 시간(퇴근 후 생활)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지금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 같군요.



[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우] 홍지수 옮김, 펭귄북스, ©알라딘




1.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말하는 '집'에 대하여


<월든>은 의식주 즉 생활 필수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생활필수품이란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얻는 모든 것 중에서 처음부터 또는 오랜 사용으로 인하여 인간 생활에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나머지, 어떤 사람도 빈곤이나 야만성 또는 인생관 등의 이유에서라도 그것 없이 살아가려고 생각지 않는 것들을 통틀어 가리킨다고 정의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생활 필수품은 식량, 주거 공간, 의복, 연료 등 참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동물은 식량 단 한 가지만 있으면 되는 것과는 대비되죠.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인간의 생활필수품 중에서도 집에 집중합니다. 


“미개인들도 오두막을 가지고 있건만, 현대의 문명사회에서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가정은 반수도 안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특히 문명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대도시에서는 자기 집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P.47


<월든>이 1852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면 좋을 것 같아요. 현재와 똑같은 상황이군요. 헨리가 살았던 당시에도 집에 대한 집착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주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감내한다고 말합니다. 은행 빚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집이란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헨리는 집을 향한 우리의 욕망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습니다. 생활 필수품의 관점에서 보면 집은 나와 내 가족의 몸을 뉘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만 확보되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더 넓고 좋은 집을 갖길 원하죠. 헨리는 집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집에 대한 집착은 내 이웃들보다 더 큰 집에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는 상대적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서 집을 생활 필수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죠.


집에 대한 집착은 영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영화 '숨바꼭질'입니다. 주희 역을 연기한 문정희가 '여기 내 집이야. 내 집이라고.' 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집에 대한 잘못된 집착이 어떤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히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더 주목했던 건 아이에게 집착이 대물림되었다는 겁니다. 아이는 자기 물건에 대한 집착 때문에 엄마처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게 되었잖아요. 



©네이버영화 <숨바꼭질>



앞서 말했듯이 집착에 대한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집을 갖는 것이 내 가족들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실제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거든요. 집착까지는 아니고 로망이라고 해야겠죠? 집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계셨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 참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의 이런 모습을 보며 집이 없으면 고생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예상합니다. 


어릴 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대답할 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물어보는 것 중 하나가 '넌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니?'란 질문입니다. 그럼 저는 마당에 잔디가 깔려있는 넓은 2층 집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 꼭 "네 성북동입니다."라는 장면이 나오는 드라마에서 본 그런 집은 아니지만 여유로움을 즐기며 살 수 있는 집 말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걸 보면 부모님이 했던 집에 대한 생각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것을 추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미 인간의 생활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윤택함의 문제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윤택함은 남들보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크고 넓은 집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3. 우리가 원하는 다운시프트, 다운시프트만이 답인가


요즘은 직업을 고를 때, 특히 고용에 대한 경험이 있는 재취업자들이 연봉과 자신의 시간을 맞바꾸는 다운시프트적인 삶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회사 생활에 실증을 느끼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야근에 시달리다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하고 이렇게 살면 안되겠단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 그런 상태에서 고민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요. 부양가족이 없는 경우엔 쉽게 다운시프트 할 수 있지만 결혼을 했거나 아이까지 있을 땐 참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합니다. 헨리는 이런 어려운 선택을 쉽게 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젊은 나이에 말이죠.





헨리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탄탄한 앞날이 보장되었음에도 월든 호수가에 오두막을 짓고 책상, 침대, 최소한의 식량만으로 자급자족하기 시작합니다. 헨리는 철저히 자급자족합니다. 주변의 도움은 거의 받지 않고요. 월든이라는 장소가 특별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의 생각을 실천한 곳이 월든인 것뿐이죠. 


자급자족하는 삶의 관점에서 보면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문서 작업만하고 조직에 최적화되는 일은 참 부질 없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 연필 제조업, 교사, 측량 업무 등의 육체적 노동을 주로 하는 일을 했던 헨리가 월든에 가져간 것은 작은 도끼 한 자루였습니다. 다운시프트 족으로 살기 위해서는 헨리에게 도끼가 있었듯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는 귀농이나 제주도 이민을 결정했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온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4. 그래서 어디로 갈까? 월든을 읽고 정말 귀농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유행했던 귀농이나 제주도 이민,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은 도시의 편리함을 잊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떠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다루지 않기 때문에 몰랐던 것뿐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버리고도 딱 한 가지 버리지 못한 것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너무 일반화한 경향이 없진 않지만 수많은 요인들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바로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열망, 돈에 대한 갈망인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을 매일 볼 수 있기에 떠나지만….



우리는 소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돈만 있으면 할 수 있죠. 귀농도 남들보다 더 좋은 집을 지어야 하고 농사를 짓는 등의 힘든 일보다 조금 더 편한 일을 찾아 카페를 인수하기도 합니다. 처음엔 꿈꾸듯 신나는 일이지만 조금 더 지나면 소득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고 도시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거겠죠. 


분명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긴 합니다. 그게 마음가짐만은 아닌 것은 알겠는데 그게 무엇인지 전 아직 알 수 없더군요.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인지, 자급자족하는 삶을 함께 할 마음 맞는 친구인지, 헨리처럼 먼저 해본 경험자나 전문가인지. 제 생각엔 선뜻 떠나겠다고 마음 먹기가 힘든 이유는 아마도 내부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삶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는데 조건이 하나씩 붙는데, 지금은 포기해야할 게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더 많은 조건들을 달고 사시겠죠.


월든을 읽는다고 어느 호수가에 집을 짓고 헨리처럼 살아야겠다며 떠나는 사람은 소수일겁니다. 가끔 이금희 아나운서가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인간극장에 나올 법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생각합니다. '정말 행복하게 산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근데 내가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한번쯤은 꿈 꿀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아침마다 일어나기 싫은 몸을 억지로 깨우며 직장으로 향합니다. 아직은 현재를 포기할 만큼 결정이 무르익지 않았으니까요. 여러분도 생각해보세요. 월든에 대한 저희 결론은 이렇습니다. 포기한 만큼 얻을 수 있습니다. 돈보다 더 소중한 내 삶을 위해서 천천히 포기해갑시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윤디자인 그룹의 입장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