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빼곤(?) 다 잘했던 90년생 Y양은 놀라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논 기억뿐만 아니라 당시 잘 나가던 연예인, 사건, 사고, 본인이 2002월드컵 때 입었던 옷(?)까지 웬만한 건 신기할 정도로 또렷이 기억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이 잘 나는 것은 당시 즐겨보던 TV 프로그램이에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 온 ‘어른인지 알 수 있는 사진’이라는 제목의 게시물.
세계 5대 성인 군자(!)라고 재평가 된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씨를 보니 짠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1990년대를 만화의 황금기라 칭합니다. 엄청나게 쏟아졌던 만화영화의 홍수에서 Y양을 집으로 일찍 들어오게 했던, 저녁놀이 질 무렵 솔솔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며 시청했던 그때 그 시절 만화영화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마어마한 기억력을 가진 Y양의 추억 속으로 떠나봅시다!
미모도 파워도 버릴 수 없다- 대세는 미소녀전사!
1. 달의 요정 세일러문
출처: chiwoobi 유투브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살며시 너에게로 다가가 모든 걸 고백 할텐데~"
80년 후반 ~ 90년대 초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여아라면 위의 노래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97년 KBS에서 방영 당시 평균 33.6%라는 시청률을 자랑했던 최고의 만화영화 ‘달의요정 세일러문’. 중간에 세일러스타즈가 변신할 때 선정적이고 어린이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송 중지 되었으나 종영 반대 서명운동까지 일어나 다시 재개되어 약 1년 여간 사랑을 받은 만화영화 입니다.
[좌) 수없이 많은 별(!)들과 같이 수없이 많았던 세일러전사들 중에서 가장 잘 알고 있을 인물들.
[우] ‘쓰리나이츠’라고 세일러문에서 아이돌과 같은 존재들. 평소엔 남자, 변신 후 여성화(응?) 된다고 한다.
이 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스타파이터는 세일러문(세라)을 짝사랑했다.
세일러문 놀이를 할 때면 서로 주인공 ‘세라’를 하겠다고 다투는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저랑 닮아 청순한(응?) 머큐리를 선택했답니다. 원래 여자아이들은 서로 주인공을 하고 싶어하는 법이죠. 저는 서브여자주인공으로도 만족한답니다. ㅋㅋ
2. 웨딩피치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세상의 솔로들을 한 순간에 불쌍한 사람들로 만든 피치 ㅜㅜ
가요계에 핑클과 S.E.S가 쟁쟁한 라이벌로 손꼽히던 시절, ‘달의요정 세일러문’에게는 초강적 라이벌 ‘웨딩피치’가 있었습니다. 피치, 릴리, 데이지, 사로비아 등 꽃과 이름이 동일한 그녀들은 아름다움의 결정체(!)와 같은 모습으로 그 시대 아이들의 우상이 되었으며(케빈과 결혼하고 싶다는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어요.), 때아닌 혈액형 붐(!)을 몰고 왔습니다. 피치는 O형, 릴리는 A형, 데이지는 B형, 사로비아는 AB형 각 멤버들 컨셉에 따라 혈액형도 가지고 있던 만화영화라니…. ㅋㅋ 주인공들 혈액형과 성격까지 확실하게 구분한 웨딩피치,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굉장하네요.
지금 아이들에게 ‘또봇’이 있다면, 그땐 여자애들 있는 집엔 저 웨딩피치 변신도구와 화장대 하나씩 집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집엔 왜 없었지….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천사+웨딩드레스+사랑+꽃+화려한 액세서리까지 온갖 좋아할만한 키워드가 짬뽕되어 있는 웨딩피치는, 확실하게 타겟층을 잡아 관련 액세서리와 마술봉, 책과 종이 옷입히기 놀이, 색칠공부 등을 판매하여 여자아이를 둔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는 최초의 등골 브레이커였다는 슬픈 전설이….
3. 인형공주 리카
간단하게 인형공주가 악당들에게 납치를 당하거나 해코지를 당할 때마다 지켜주는 인형의 기사들이 내용인데요, 생각 해 보면 별 내용이 없었는데, 그렇게 학교에만 가면 같은 분단 친구들끼리 ‘인형 공주 리카’ 노래를 함께 부르곤 했어요. 저 인형기사들 중 남자인형기사 멋졌던….
4. 리리카 SOS (간호천사)
사랑의 간호천사 붐을 일으켰던 리리카 SOS.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간호사로 많이 바꿔준 만화입니다. 리리카는 위험한 일이 있을때 항상 간호천사로 변신하여 지구의 위기를 구합니다. 그러나 마지막회에서 11번째 리리카의 생일에 자기자신이 죽어야지 지구를 구한다는 것을 알고 테레사 수녀 못지 않은 희생으로 지구를 살려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다시 찾아보니 만화 작가말로는 '리리카는 살아있다'라고 암시를 줬다고 하는데, 대체 어느부분이…?
바야흐로 온갖 ‘왕’들의 시대- 소년 ‘왕’들의 등장
좌측 위부터 요리왕 비룡, 피구왕 통키, 낚시왕 강바다,
태권왕 강태풍, 스피드왕 번개, 축구왕 슛돌이
세상에 웬 이렇게 소년들을 ‘왕’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요리, 피구, 낚시, 태권, 달리기, 축구 등 왕중왕 전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네요. 이름만 봐도 내용이 대충 짐작 되지 않으시나요? ‘요리왕 비룡’은 비룡이가 요리왕 되는 이야기, ‘태권왕 강태풍’은 태풍이가 태권광 되는 이야기, ‘낚시왕 강바다’는 바다가 낚시왕 되는 이야기, 스피ㄷ…. ㅋㅋㅋㅋ 그래도 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만화영화들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피구왕 통키 때문에 초등학교에 배구 붐이 일어 너나 할 것 없이 불꽃슛 연습을 했고, 축구 좀 한다 하는 친구의 별명은 ‘슛돌이’ 였으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리왕 비룡의 만두대결을 보며 매일 침을 흘렸다는…. 아 정말 맛있어 보이지 않으셨나요? Y양은 만두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소룡포 만두를 먹을 때마다 비룡이가 만든 딤섬이 이런 맛이 아니었나 상상합니다. 엉뚱하죠? (후후)
남녀 모두 즐길 수 있었던 로봇 만화영화
1. 사자왕 가오가이거
사람에게 감염된 존더 메탈이 기계와 융합하여 로봇으로 변신하고 이를 막는 이야기. 사실 잘은 기억 안 나지만 꾸준히 시청했고, 주인공들이 잘생겨서 잘 챙겨봤던 것 같은 기분이.. 쿨럭;; 사실 유년층보다 청소년이나 성인 팬 사이에서 더 높은 인기를 끌었고, 대상층인 저연령 아동 사이에서의 인지도는 기실 역대 시리즈 전성기에는 못 미치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1999년에 방송이 되었는데, 사실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좀 많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Y양이 10살 때니깐 정말 내용 이해가 힘들어서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 기억이 있네요. ㅋㅋ
2. 지구용사 선가드
“무지개 다리놓고 가고 싶어도~ 지금은 갈 수 없는 저 먼 우주는
아름답고 신비한 별들의 고향~” –지구용사 선가드 주제가
세일러문 노래만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지구용사 선가드’는 따라 부르기 쉬운 낮은 음과 스토리를 다 알려주는 가사 (평화를 파괴하는 악의 침략자 ‘드라이어스’와 싸우고 결국 물리치는 지구용사 선가드) 때문인지 몰라도 동네 아이들과 종종 불렀던 게 아직도 입에 착 붙어 있습니다. 역시 저는 저 경찰차 같이 생긴 선가드의 컬러감이 로봇 중에 가장 맘에 듭니다. 심지어 선가드(한국 이름 한불새)는 선하고 착하고 싸움까지 잘했었지요.
3. 태양의기사 피코
[좌] 생강빵 아기처럼 생긴 용사 ‘피코’
[우] 궁전들이 로봇이 된다는 다소 참신한 아이템을 가진 만화
주인공이 용사인데 봉제인형인데다가(심지어 물을 먹으면 몸이 무거워진다;;), 검은 마왕이 조종하는 나쁜 성(Castle)이라니…. 그래도 꽤 흥미롭게 봤었던 것 같아요. 맨 처음 피코가 태양의 기사가 되는 장면이 기억나는데, 어느 돌에 태양의기사의 칼이 꽂혀 있는데 그 칼을 아무도 못 뽑았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비웃던 피코가 나와서 그 칼을 뽑고, 태양의 기사가 되고 마는! 지금 생각하면 뻔하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는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4. 무적 캡틴 사우르스
무적캡틴사우르스는 공룡이라는 소재로 로봇이 나오고 학교자체가 로봇이라는 소재를 가진 만화영화로 기계신이 지구전체를 기계화 시키려 하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지구나 인간기계화는 만화영화 단골 소재 같다.) 아이들은 그에 로봇으로 대항하여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입니다. 학교가 갈라지고 로봇들이 등장한다는 소재 때문에 전국 수백만 초등학교의 전설 중 ‘이 학교는 사실 12시만 되면 변신을 한대~’ 라는 괴소문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영화 ‘인터스텔라’ 보다도 더 환상적인- 시공간을 넘나드는 만화영화
시간탐험대, 포켓몬스터, 디지몬어드벤처, 사차원탐정 똘비, 꾸러기 수비대
미지의 세계와 시간탐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끊이질 않는 것 같습니다. 만화에서도 정말 단골소재로 쓰여지고 있지요. ‘시간탐험대’와 ‘사차원탐정 똘비’, 그리고 ‘꾸러기 수비대’의 경우 정석(!)으로 매주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밥 먹듯 하였고, 폭발적인 인기로 포켓몬과 디지몬 스티커의 붐을 일으킨 ‘포켓몬스터’와 ‘디지몬 어드벤처’는 새로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었습니다. ‘디지몬어드벤처’에서 여름 캠프를 떠난 아이들이 큰 폭포에 휩쓸려 도달한 디지털세계에서 디지털몬스터라서 수수께끼의 생물들과 만났을 때, Y양은 이 만화를 시청하는 여름방학 동안 ‘혹시 나도 저 세계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답니다. 결국 이렇게 커버렸지만요. (잘생긴 남자주인공 매튜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꾸러기수비대’ 는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 드라고 요롱이 마초 미미 진사오미…’ 자축인묘인사오미신유술해 라는 어려운 십이지신을 오프닝곡으로 만들어 아이들이 한번에 외우게 해준 의외로 교육(!)적인 만화영화로 지금도 90년대생인 분들이 헷갈릴 때면 위의 노래를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합니다. ㅋㅋ
성인이 봐도 충분할 만한 스토리와 재미를 가진 만화영화
국산 애니메이션의 역작 ‘사이버영혼 바스토프 레몬’
‘사이버영혼 바스토프 레몬’ 을 아니나요? 방영 당시 대대적인 홍보와 신인가수를 이용한 M.net 뮤직 비디오까지 제작해 각종 언론매체에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주 시청 층인 저학년 아이들과 10대들에게 외면 받아 사라져 간 비운의 작품입니다. 2001년도 방영 당시 감수성 높은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던 Y양은,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상처받고 병든 10대들의 영혼이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SF 미스테리물인 ‘바스토프레몬’은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 때 5학년 같은 반 꼬꼬마 중에 이거 챙겨보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다는 슬픈 추억이…
[좌] 베르사유의 장미. 마지막에 오스칼에 대포를 쏘다 죽었을 때 눈물을 철철철 흘렸었다.
[우] 은하철도999의 철이와 메텔 그리고 차장
그 밖에도 워낙 유명한 ‘베르사유의 장미’와 ‘은하철도999’, ‘명탐정 코난’ 같은 명작들은 지금에 와서도 회자되고 있는 좋은 작품들입니다.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면서 프랑스혁명과 ‘마리 앙뚜아네뜨’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은하철도999’가 담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생각이라던지 이기심, 욕망 따위를 한번 더 생각 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한편 한편 내용들이 풍부해서 성인이 되어 다시 봐도 즐길 만 한 애니메이션인 것 같습니다.
극장판 ‘코난’을 보러 갔던 누군가가 말해 준 얘기.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영화를 보러 왔는 데, 코난이 “내 이름은 코난!” 하자마자
아이들 모두 “탐정이죠!”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ㅋㅋ
우리는 언제부터 만화영화와 ‘안녕’ 하게 된 걸까요? 그 많던 만화영화들은 언제부터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을까요~? 어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 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늘어만 가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이제는 (다 컸다는 이유로) 잘 할 수 없는 게 되 버린 TV 만화영화 시청. 갑자기 부쩍 커버렸음에 속이 상하는 몸만 큰 어린애 Y양이었습니다.
[채널고정(?)] 2탄이 다음달에 계속 됩니다-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