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1.

고양이에게 배우는 ‘꾹꾹이 관계론’




#1 나는 왜 고양이를 두려워했던가


퇴마사의 이야기를 다룬 <콘스탄틴>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끽연가 퇴마사 존 콘스탄틴(John Constantine)을 연기했던 작품이지요. 2007년에 개봉한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연신 카멜(Camel) 담배를 피워대던 터프한 키아누 리브스의 모습도 아니요, 실로 지성(캠브리지대학교 졸업)과 미모, 섹시함과 청초함을 두루 갖춘 여주인공 레이첼 와이즈의 자태도 아니요, 현란한 특수효과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고양이'었습니다. 극중 콘스탄틴이 현실계에서 지옥으로 차원 이동을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때 일종의 ‘열쇠’ 역할을 하는 도구적 동물로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고양이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순간, 어느새 콘스탄틴은 지옥의 한가운데로 가 있게 됩니다. '아, 그렇구나. 고양이는 지옥의 문을 여는 요물이구나….'이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콘스탄틴’에 등장하는 고양이 / 출처: 영화 장면 캡처


고양이를 오컬트(Occult)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건 <콘스탄틴>뿐만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 봤던 이런저런 만화나 동화에서도 고양이는 왠지 불길하고 음험한 존재로 묘사되었던 듯합니다. 마녀의 집엔 항상 검은 고양이가 웅크려 있던 기억이…. 그러고 보니 <형사 가제트>의 악당인 클로 박사도 늘 어두컴컴한 밀실에 앉아 검은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지요. 



제가 고양이를 저어하게 된 계기는 대략 이러합니다. 유년기부터 봐왔던 일련의 이미지들이 무의식 중에 각인된 효과라 할 수 있겠지요. 고양이 말고도 우리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두려워하는 것들은 많습니다. 다리를 떨면 복이 달아난다고 믿는 것(정말 다리를 떨어 복이 달아남을 경험하였고,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자 누구?), 이른 아침에 거미를 죽이면 불행이 닥친다고 믿는 것(일본에서 유래한 이야기입니다만, 이 덕에 거미들은 목숨을 부지함) 등등. 이런 맥락에서 고양이는 매우 억울한 동물이지요.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에 의해, 그리고 그것이 어떤 보편성을 획득하여 지금껏 전승되어온 탓에 고양이들은 아무 혐의가 없음에도 애꿎게 '영물(靈物)'이라는 죄목을 달게 된 것이지요. 



‘형사 가제트’에 등장하는 클로 박사의 오른팔과 고양이 / 출처: 만화 장면 캡처



#2 고양이와의 인사법 - 손 내밀기와 눈 마주치기


경상남도 함양, 병풍 같은 지리산 자락이 보이는 창원마을. 이 마을엔 제가 자주 찾는 민박집이 한군데 있습니다. 집 외벽에 신경림 시인의 시 <그 길은 아름답다>가 인쇄된 현수막이 걸려 있지요. 시적인 정취가 흐르는 이 집에는 열댓 마리의 어리고 나이 든 고양이들이 삽니다. 환경운동가인 주인 아저씨께서 '길냥이(길가를 헤매는 고양이들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들을 한 마리씩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지요. 제 숙소였던 토방에 혼자 앉아 고양이들이 왔다 갔다 하며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도시에서 딱딱하게 굳어졌던 마음이 기분 좋게 물러졌습니다. 지리산에서 보낸 시간들이 저에게는 고양이와 정서적으로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던 듯합니다. 


 

지리산 고양이들의 흔한 일상



하지만 고양이와 스킨십을 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1년 넘게 저는 주말마다 지인이 운영하는 북카페에 놀러 가서 청소도 하고 차(커피, 페퍼민트, 석류, 십전대보탕, 쌍화탕 등등)도 마시며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데요, 최근에야 알았는데, 그룹 윈디시티의 보컬 김반장, 록밴드 백두산의 보컬 유현상과 기타리스트 김도균, 산악인 엄홍길 등도 다녀갔었다고 하더군요. 이 카페에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터줏대감 격인 세 마리는 각각 '달', '별',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달이, 별이, 낭만이와의 첫 만남은 매우 어색했습니다. 무턱대고 한번 만지려다가 겁 많은 달이를 부들부들 떨게 만든 적도 있었고, 서열 1위인 별이에게 앞발 차기를 당하기도 했으며, 경계심 많은 낭만이로부터 ‘하아악!’(고양이가 상대방을 극도로 꺼릴 때 내는 위협음)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고양이가 마음을 쉽게 여는 동물이 아니라는 건 얼핏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었지요. 



어색한 표정의 달이



사람들은 인사할 때 목례나 악수를 합니다. 사람들끼리의 인사법이지요. 고양이들과의 인사법은 조금 다릅니다. 손 내밀기와 눈 마주치기(그리고 깜빡거리기). 고양이들은 천성적으로 겁이 많고 무척 예민한데요, 큰소리나 저음으로 이름을 부르면 매우 무서워하지요. 그래서 아기를 얼를 때처럼 부드럽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불러줘야 합니다. 그 다음엔 천천히 손을 내미세요. 고양이 코끝 쪽으로 슬며시 손끝을 대주면, 고양이는 그 손의 냄새를 맡습니다. 체취로 상대방을 인식하는 것이지요. 자주 냄새를 맡게 해주면 그만큼 고양이들에게 기억될 테니 점차 친해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친해졌다 싶으면, 고양이 쪽에서 사람을 쳐다보며 눈을 깜빡이는데요, 고양이들의 눈인사입니다. 고양이들이 눈인사를 해온다는 건 이미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뜻이지요. 당연히 답례를 해주어야겠지요? 고양이와 마주보며 천천히 눈을 깜빡여줍니다. 



별이와의 초창기. 필자를 피해 숨어 있는 별이



손 내밀기와 눈 마주치기, 이 두 단계가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고양이마다 성격들이 다 달라서 친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 역시 차이가 있습니다. 자주 만나 손을 내밀고 눈을 마주치다 보면, 어느새 고양이가 먼저 다가와 당신의 다리에 제 몸을 비빌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고양이가 당신에게 스킨십을 허락한 순간이지요. 애정을 듬뿍 담아 소중하게 쓰다듬어주면 고양이는 그동안 숨겨왔던 온갖 애교를 보여준답니다. 



북카페 아기 고양이들과 함께



#3 '꾹꾹이' 관계론 


고양이계 최고의 애교는 일명 '꾹꾹이'입니다. 살을 주무르듯, 앞발로 사람의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는 행동이지요. 꾹꾹이를 경험했다면 고양이와 절친이 되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이 관계까지 가면 고양이는 사람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몸을 뒤틀며 배를 보이곤 하는데, 이는 '나는 당신이 좋아요.'라는 말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존심 강한 고양이는 절대로 배를 쉽게 드러내지 않거든요. 


고양이와 가까워지는 과정은 남녀 사이의 만남과 닮았습니다. 지속적으로 만나 인사하고 과도한 들이댐이 아닌 정감 어린 ‘다가감’으로 서서히 거리를 좁히고 서로의 체온과 체취를 교감하고 그렇게 마음을 나누게 되는. 



어느새 스킨십을 허락한 서열 1위 별이



고양이와의 관계 맺기는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식물이든 내가 만지고 싶다고 함부로 만져도 되는 게 아니니까요. 처음 눈인사부터 꾹꾹이에 이르는 과정에는 모든 '과정'들처럼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양이를 보면서 저는 관계 맺기와 더불어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배우게 되는데요, 내 손길을 피한다고, 내게 안기지 않는다고, 내게 꾹꾹이를 하지 않는다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쉽게 다른 존재를 내쳐버리기 전에 그 존재의 체취와 체온을 생각해보게 된달까요. 여기서의 존재란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하는 일이 될 수도, 주변 사람들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이런 생각을 '꾹꾹이 관계론'이라 정의하렵니다. 고양이와 가깝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제 마음에도 고양이 털 같은 부드럽고 따듯한 게 돋아나는 걸까요. 



아기 냥이의 애정 비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