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6.

윤디자인그룹의 첫 번째 좌담회 〈선을 넘는 순간, 타이포커뮤니케이션〉 리뷰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 수요일, 윤디자인그룹에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바로, 〈선을 넘는 순간, 타이포커뮤니케이션〉 오프라인 좌담회가 열렸거든요.

 

윤디자인그룹은 최근 새로운 사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컨설팅하는 ‘타이포커뮤니케이션’과 기업과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하는 ‘아카데미 윤’입니다. 윤디자인그룹이 가장 잘하는 글자에서 시작해 다양한 사업 분야로 확장하고 있고, 이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기획/운영. 조안나, 문하나

글. 정이현 | 사진. 문하나, 정이현

 

 

 

윤디자인그룹과 함께 선을 넘는 시간

 

〈선을 넘는 순간, 타이포커뮤니케이션〉 좌담회의 첫 순서는 “선을 넘는 순간이 무엇인가요?”라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지구에서 카르만 라인(Kármán line)이라는 경계선을 넘으면 광활하고 무한한 우주가 펼쳐집니다. 선을 넘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리고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류가 카르만 라인을 넘어 우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이, 윤디자인그룹은 글자를 그리는 선을 넘어 더 멀리 더 너른 영역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이번 좌담회를 통해 알리고 싶었습니다.

 

 

 

 

윤디자인그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살펴볼 수 있도록 좌담회는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윤고딕을 바탕으로 제작한 슬로우스테디클럽 서체, 폰트를 넘어 로컬 브랜딩을 담은 개항로 서체 그리고 엉뚱상상의 메시지 무브먼트까지 세 가지 주제로 각각 윤디자인그룹의 서체 디자이너 박현준 대리, 이정은 팀장 그리고 엉뚱상상 스튜디오의 최치영 대표가 좌담회를 이끌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서체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부터 브랜드 전략을 고민하는 기업 담당자까지 다양한 참석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중 몇 가지를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현준 서체 디자이너와 정은 서체 디자이너, 치영 대표를 편의상 각각 , , 로 표기합니다.)

 

 

Q. 좋은 타이포그래피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좋은 타이포그래피의 모범답안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 쾌적함을 이야기했었는데, 현대에 와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많이 고민하면서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느껴요.”

 

Q. 작업을 해도 해도 고쳐야 할 점이 보이는데, 언젠가 끝내야 할 때가 오잖아요.

“인터넷에 유행하는 움짤 중 뒤에서 탁탁하면 이렇게 고치고 또 탁탁하면 저렇게 고치고 무한 반복하는 짤이 있어요. 서체 디자인이 그렇습니다. 피드백 받아서 수정했는데 너무 갔다고 다시 빼고, 계속 반복하면서 답을 찾아갑니다. 시간과 자원은 한정적이고, 클라이언트와 약속한 일정이나 서체 출시 일정이라는 데드라인이 존재하기에, 그때까지 계속 수정하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완벽한 정답을 찾기보다는 처음에 생각한 일관된 원칙을 지키면서 다듬고 고쳐나가다 보면, 데드라인이 왔을 때 충분히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Q.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영감은 일상에서 툭툭 다가오는 것인지, 내가 얻고 싶다고 와주는 게 아니지 않나요? 저는 책 속에서 어떤 단어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의외의 의미를 지녔거나 생경한 단어들은 생각이 뻗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평소 지도 앱에 핀을 꽂아뒀다가 찾아가기도 하죠. 저는 두 아이의 엄마라서, 아이들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서도 영감을 얻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비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영감을 발견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Q. 디자인을 글자로만 표현할 수 있다는 제약, 어떻게 헤쳐 나가시는지?

“전 사실 일러스트를 활용하는 걸 좋아하는데, 어쩌다 서체 회사에 와서 팔다리가 다 잘렸습니다. (웃음) 그런데 크리에이티브한 것은 제약이 많을수록 생깁니다. 해보고 싶은 대로 작업하는 건 핀터레스트에서 본 멋진 디자인을 비슷하게 구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하지 말아야 할 99가지가 있으면 잔머리를 굴리게 되고, 이상한 게 나오죠. 그게 크리에이티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전용서체를 개발한 기업들과 소비자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창원시가 세계에서 단감이 가장 많이 납니다. 이를 알리기 위해 SNS 광고도 하고 여러 가지 많이 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창원시 농산물 팀에서 의뢰가 들어왔었어요. 그래서 폰트 하나 만들어보자고 했고, 그렇게 완성된 것이 ‘창원단감아삭체’입니다. 먹방 유튜버를 타깃으로 만들어서 폰트를 배포하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창원이 왜 단감체를 만들었대?’, ‘창원에 단감이 많이 나서’ 이런 식으로 바이럴까지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국민들의 소통 수단을 만들었죠. 바이럴 폰트를 만드는 기업들은 거의 다 만족도가 높습니다.”

 

 

 

 

Q. 서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요?

“처음 윤디자인에 들어왔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서체 디자인은 호흡이 긴 작업입니다. 제작 기간도 길고, 글자 수도 많고, 한 자 한 자 계속 수정하고, 미세한 차이를 발견해야 하죠. 내가 보기엔 똑같은데 왜 자꾸 수정하라고 하시는지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때의 희열감이란. 사실 전 편집 디자인을 하고 싶어서 한 2년 다니다가 편집 회사로 가려고 했거든요. 근데 그 희열 때문에 지금까지 윤디자인에서 계속 서체를 만들고 있네요.”

“서체 디자이너로 지원하면 포트폴리오를 피티하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면접을 보는데요, 사실 디자인은 상향 평준화되어 있어서 다들 너무 잘해요. 그런데 왜 이런 색을 선택했는지, 왜 여기에 이런 타이포를 넣었는지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각적으로 했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논리적인 디자인을 좋아해요. 어떠한 이유로 이 색상을, 이 폰트를, 이 레이아웃을 선택했는지, 결과가 나오기까지 아이데이션을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지원자를 뽑습니다. 실무에서 서체 디자인은 기획부터 작업 결과까지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감각만으로는 어렵거든요.”

 

Q. 윤디자인그룹이라는 회사의 장단점은?

“한 15년 전에 윤디자인에 입사했는데, 그동안 정말 많이 변했어요. 야근문화도 많이 없어지고, 정책이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사실 개항로 서체는 의뢰받은 것도, 지자체에서 비용을 지급하는 것도 아니에요. 자사 신서체가 하나 늘어나는 것뿐이고, 수익이 바로 나는 구조도 아닌데, 제가 너무 하고 싶어서 추진한 거였습니다. 근데 회사에서 의미가 좋고 재미있을 것 같다며 격려해줘서 너무 좋았고 감사했죠. 또 윤디자인은 다른 서체 회사보다 프로세스가 체계화되어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단점은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소비자 트렌드가 너무 빨리 변해서 호흡이 긴 서체 작업이 따라가기가 조금 버거워지고 있습니다.

 

Q. 그럼, 트렌드를 어떻게 따라잡나요?

이 “레트로가 유행했다가 꽉 찬 네모 틀의 글꼴이 유행하고, 특히 영상 매체에서 자주 사용되는 볼드한 서체가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을 순 없어서, 늘 딜레마가 있습니다. 트렌디한 서체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해오던 본문용 서체 연구처럼 시간과 사람이 많이 필요한 일도 계속 해야 하니까요. 어쨌든 트렌디한 서체도 만들고 있지만, 그건 다른 회사들이 많이 선점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프리미엄한 서체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